유럽에선 거친 바람으로 악명이 높은 공항이다.
착륙할 시간에 순간 측풍이 30 나트에 이를 수 있다는 예보에 혹시 눈치 없이 부기장이 PF(Pilot Flying)를 하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려다 그냥
"이번엔 내가 해도 될까?" 했더니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 선뜻 그러란다.
암스테르담에는 5개의 활주로가 있는데 맨 서쪽 18R를 배정받았다. 폭이 60미터에 길이도 3800미터에 달하는 준수한 활주로다.
측풍이 강한 날에는 이처럼 폭이 넓고 긴 활주로가 확실히 긴장감을 덜어준다.
Tempo예보가 그렇듯 안 맞을 확률도 절반이상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착륙당시 측풍은 우측 50도 각도에 28 나트까지 순간 풍속이 찍혔다.
2000피트 정도까지 내려가니 구름 속에서 비까지 뿌린다. 일단 와이퍼를 중간강도로 써두고 활주로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오토파일럿으로 접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1000피트 이하에서 측풍은 약 30 나트까지 불고 여전히 운중이다.
오토파일럿을 통상 끊는 시기가 지났음에도 아직 나의 눈은 정면에 활주로를 찾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좌로 돌려 측풍에 우로 돌아가 있을 777의 헤딩을 고려했다.
700피트 무렵에서 어프로치 라이트가 보이더니 500피트 이전에 완전히 로우실링의 바닥을 뚫었다.
운중에서 보다는 훨씬 약한 드리즐성의 강수만 흩날리는 상황이라 와이퍼를 로우 상태로 바꾸고 마침내 매뉴얼 착륙을 위해 오토파일럿 차단 버튼을 두 번 눌렀다.
화면에 지난 7시간 동안 시현되어 있던 AP 가 사라지고 메뉴얼 비행상태임을 알리는 FD가 나타났다.
속도는 브리핑한 것처럼 거스트(돌풍)성 측풍을 대비해 기존 접근 속도에 2 나트를 추가한 152 나트를 세트 했다.
예상처럼 500피트 이하에서도 속도는 여전히 심하게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트렌드 벡터(10초후의 속도를 미리 알려주는 지시계)가 절대 이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미니멈 VREF속도를 금방이라도 침범할 듯 불안정하다.
그때마다 쓰러스트레버를 감아진 나의 손은 머슬메모리에 따라 생각이 아닌 본능으로 반응했다.
플레어는 조금 늦게 시작했다. 지면과의 접근율이 평소보다 급하지 않았다. 이미 충성스러운 기사처럼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나의 왼발이 언제라도 항공기의 기수를 활주로 방향으로 돌려주는 디크레빙을 하기 위해 단단히 러더를 받치고 있었다.
'텐 피트에서 측풍이 부는 오른쪽으로 서서히 윙을 눕히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나의 충실한 왼발이 러더를 지긋히 밀어 넣은 게 느껴진다.
느낌상 지속적인 침하를 허용했다.
트림(Trim)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파워로 순간순간 무거워지는 피치를 보상했다.
터치다운을 부드럽게 만드는 마지막 플레어는 오늘만큼은 사치였다.
그대로 침하를 허용하며서 날개를 오른쪽으로 좀 더 눕히자 러더는 그만큼 깊게 들어갔다. 내 왼발은 이 모든걸 기억한다.
접지는 '퉁' 하는 느낌 정도로 경쾌했다.
바로 리버서를 작동시키고 러더를 깊게 차
우측으로 돌아가 있던 항공기 노즈를 활주로 센터라인 쪽으로 욱여넣었다. 동시에 오른쪽 윙이 들리려는 경향을 느끼고는 급하게 거의 최대로 오른쪽으로 요크를 눕히고 동시에 노즈를 서서히 떨궜다.
'이렇게 랜딩 피치가 높았었나?' 싶을 정도로 한참을 떨어지더니 마침내 노즈기어까지 '퉁' 소리를 내며 정확히 활주로 센터라인에 이쁘게 내려앉았다.
강한 바람 때문인지 감속이 예상보다 빨랐다.
예정된 왼쪽 두 번째 하이스피드 엑시트로 여유 있게 뺄 수 있었다.
이렇게 악명 높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나의 첫 30 나트 측풍 착륙이 종료됐다.
그런데 뭔가 좀 아쉽다.
솔직히 좀 더 극적인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다.
날씨가 험한 날을 늘 운 좋게 피한다면 이 일도 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암스테르담 바람아!
나중에 측풍제한치인 40 나트로 한번 다시 겨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