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당장 자리로 돌아가 앉으세욧!”
그녀가 매섭게 눈꼬리를 추켜올리고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다가 마지막에는 눈까지 부라리는 기세다. 순간 예상치 못한 승무원의 기세에 눌려 움찔하다가
“난 지금 돌아갈 수가 없는데 “
그날 난 칵핏에서 70미터를 내려와 꼬리 쪽 겔리에 다다라 목적지를 불과 몇 미터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그래도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겔리 쪽으로 내려오자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소리까지 지를 기세였다.
그때 내가 반쯤 그녀를 향해 등을 돌렸다.
“CREW’
직전 갈아입은 회사 파자마의 등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는 그녀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번졌다.
그제야 자신이 방금 CAPTAIN JAY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눈까지 제대로 부라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눈치다.
“기장님 미안합니다. 좌석벨트 사인이 들어와 있어서 모두 앉아 있는 상황이라 기장님인 줄 몰라봤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
좌석에 앉아 HARNESS까지 꼼꼼히 맨 체로 나를 올려다보는 이 영국인 부사무장은 미안한 듯 손까지 앞으로 모으고 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요. 제가 사인을 켜고 내려왔으니 이런 오해는 제 탓이기도 하네요.”
그렇게 CRC(Crew Rest Compartment) 크루 휴식용 벙크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와 맨 안쪽까지 낮은 천장으로 인해 허리를 잔뜩 숙이고 들어와서는 좌측 기장용 침실에 들어와 누어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도 잠시 당황했지만, 지금껏 어떤 승객이 정말 화장실이 급해서 좌석 SIGN이 들어온 상황에서 화장실을 향했다면 나의 승무원들은 매번 그에게
“당장 좌석으로 돌아가세요!”
이라고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 아닌가.
‘이건 승무원들의 잘못이 아닌 기장인 나의 잘못이다. 내가 좌석 사인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
이후 저는 매번 비행 전 크루들과의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저만의 룰을 크루에게 전달하여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 노력합니다.
“오늘내일 비행 중에 좌석 사인이 들어오면 이건 비행기가 터뷸런스에 들어갔거나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Precautionary 한 사인입니다. 승객들이 좌석에 앉아 벨트를 매고 있어 주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만약 화장실이 급한 승객이 있다면 막지 마시고 보내주십시오. 만약 정말 모든 승객이 좌석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고 절대로 이동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면 제가 별도의 기장방송을 하거나 인터폰으로 사무장께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해하셨죠? 그러다 만약 예상치 못한 극심한 터뷸런스에 조우해 승객이 다친다면 그건 여러분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기장인 저의 책임입니다. “
이렇게 말을 해둔 이후로는 비행 중에는 좌석벨트와 관련한 승객과 승무원 간의 실랑이가 더는 없습니다.
대신 기장인 저의 책임이 좀 더 무거워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절대로 Severe Turbulence로 승객과 승무원의 부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안전한 경로를 선택해서 비행하거나 아니면,
피치 못할 경우에는 미리 서비스를 중단하고 모두를 좌석에 앉혀두고 어느 정도의 터뷸런스를 감내하고 악기상 지역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통과해야 합니다. 동남아 지역처럼 기상레이더 상의 위험 지역이 100마일을 넘어가는 등 너무 광범위해서 좌나 우측으로 완전히 회피할 수 없는 경우나 간혹 연료가 부족해 더는 보수적인 회피를 감당할 상황이 안될 때입니다.
사무장에게는 이 경우 최대한 미리 세부적인 상황을 설명합니다. 터뷸런스가 언제 시작되어 언제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지 저의 생각을 미리 알립니다.
물론 저의 예상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고 나면 10에 9는 자리에 앉히지 않았어도 되었을 터뷸런스였다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이 룰을 지속합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승객과 승무원도 제가 책임을 지는 항공기에서 터뷸런스로 다친 경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10시간의 비행에서 승객과 승무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보통 30분 이내입니다.
P.s. 비행 중 터뷸런스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예전 대한항공에서 330을 타던 시기 한 번은 인천에서 출발해 일본 오사카에 도착하는 약 2시간 비행 동안 극심한 터뷸런스로 인해 모든 서비스를 포기한다는 사과 방송을 한 뒤 내내 승무원들을 좌석에 앉혀 둔 채로 비행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기장님의 판단을 믿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