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의 마음을 읽다.
'공감하다’와 같은 말이지만 오늘은 '서로의 마음을 읽다', '서로의 진심을 읽다'로 달리 표현해볼게요.
어제는 마닐라로 가는 3명의 조종사 중 항로 기장으로 동승했습니다.
마음 선한 20년 차 인도인 기장과 Drug and Alcohol Test로 늦게 브리핑실에 도착한 에마라 티 부기장이 처음 들어섰을 때
전 저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후줄근하고 자기 몸보다 한치수는 커 보이는 유니폼 재킷에 치켜올려 쓴 모자와 그 속에 부풀어 오른 단정하지 못한 곱슬머리까지. 아마 이발소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1년은 넘은 것이 확실합니다.
첫인상은 무슨 찰리 채플린을 보는 줄.. ㅋㅋ
그런데 이상하게 이 26살 청년이 이 모든 황당한 외모에도 제 눈에 전혀 거슬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눈을 처음 본 순간 아~ 이 친구 ‘귀여운 갈색 푸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아주 내성적인 성격에 말소리가 너무 작아 몇 번을 다시 말하게 해야 했지만 비행 내내 저는 이 친구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더군요.
마닐라에 도착하고 다시 엉망으로 구겨진 때 묻은 모자를 부풀어 오른 곱슬머리의 정상에 엉성하게 pitch 20도 각도로 얹어 둔 그를 보고는 다시 웃음이 나서는 결국
"자네 나랑 사진 좀 찍자! 어디에도 사진 올리지 않을 거야. 약속해!" ㅋㅋ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기어이 이 친구와 여러 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에서는 궁금한 마음을 더 이상 누르지 못하고 기어이 물어보고 말았네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왜 그런 머리에 그런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지 이유가 있을 텐데, 내게 말해 주겠나?"
잠시 저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는 그가 전한 말은 예상대로
"이혼하고 저를 떠난 어머니가 어릴 적 저의 더부룩한 곱슬머리를 싫어해서 언제나 짧게 깎게 했어요. 전 그게 어린 마음에도 정말 싫었어요. "
그의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그 결혼에서 2명의 동생이 태어났다는 말에 저는 또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새어머니는 자네에게 잘해 주셨나?"
대답을 바로 못하고 고개를 잠시 돌리는 그의 눈에서 더 이상 답을 듣지 않아도 충분했습니다.
"00. 난 군 장교 출신이라 사실 자네처럼 유니폼 스탠더드를 무시하고 머리도 단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네 눈을 바라보고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네. 하지만 자네를 위해 꼭 한 가지만은 조언해 주고 싶어. 지금은 부기장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기장이 된 이후에도 이러면 안 돼. 왜냐하면 17명 크루의 리더로서 자네는 이들에게는 롤모델이어야 하기 때문이야. 그들이 자네처럼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다닌다면 자넨 어떤 말도 그들에게 해줄 수 없지 않을까? 그들의 롤 모델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네. 자네가 언제 변할지 나는 몹시 기대가 된다네. "
이 말을 하며 활짝 웃어주었습니다.
두바이로 돌아와 헤어지는 부기장과 악수를 하는데 이 친구 갑작스럽게
푸들같이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하고는
"기장님 어려운 일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순간 당황해서는 "야 그건 기장인 내가 부기장한테 할 말이지!"
라고 말하곤 헤어지는데 속으로는
"이 녀석 뭐지? "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왕족인가? ㅋㅋㅋ
전 이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가 몹시 기대됩니다.
브리핑실에 들어서던 그의 마음을 제가 먼저 읽었고 그다음엔 그가 제 마음을 오해 없이 읽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