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과 다정함 사이

냉탕과 온탕 사이

by 뱅쇼

미혼 여성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기 엄마로 산다는 것은 이전의 삶을 전생으로 여겨야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본캐인 나와 부캐인 엄마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사회가 그것을 가만두지 않는다. 나를 챙기려 하면 엄마가 돼서 뭐 하는 거냐는 질타를 받고, 아기만 챙기려 하면 아기 캐리어도 아니고 나를 찾으라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게 아기 엄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걱정을 가장한 고나리라고 하지만 실은 그저 최하층민, 즉 나보다 밑으로 보니까 한 마디씩 얹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기 엄마가 되면 내 가치와 주관이 없어지고 그냥 아기의 엄마로만 남는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이와 산책을 갔던 때의 일이다. 유아차에 방풍커버를 씌우고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계속 쫓아오면서 아기 숨 막힌다고 엄마가 그것도 모르냐고 따졌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앞이 막혀있으니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설명을 드렸다. '방풍커버 사이에도 틈이 있고 옆에 구멍이 뚫려있어서 숨 쉬는데 지장이 없어요.'


그러나 다음날 그 아주머니를 또 만났는데, 아예 우리 앞을 막고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소란을 피웠다. 그때 알았다. 진짜 아기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그냥 시비를 걸고 싶었던 거란 걸. 아무렴 내가 아기 엄마인데 숨도 못 쉬게 했을까. 잘 몰랐던 거라면 설명을 듣고 사과를 하고 갔어야 하는데 말이다. 다행히 지나가던 다른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 딸도 방풍커버 씌우는데 괜찮다고 내 편을 들어주니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되었지만 종일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아기가 놀랄까 봐 맞서서 대응도 못 했는데 억울했다. '내가 아기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저런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오후, 기분이 나빴지만 아이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미혼 시절, 요리의 요자도 모르고 국 하나 끓인 적 없던 내가 좋은 고기를 사겠다고 전통 시장 안 정육점에 간 것이다. 사장님은 엄마 보단 어리지만 나보단 연배가 있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주문한 고기를 썰다 말고 갑자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매일 이유식을 만드냐고. 나는 재료를 사서 큐브를 만들어놓고 밥솥으로 끓여서 소분하기 때문에 보통 이틀 정도 먹인다고 말을 하니 요즘 엄마들 살기 편해졌다, 날마다 만들어야지 냉장고 들어갔다 나오면 애가 먹냐는 거다.


순간, 너무 황당해서 오늘 나 몰래 카메란가? 싶었다. 대꾸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나한테 왜 그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니 고기 사러 온 손님한테 고기만 팔면 되지 왜 부탁도 안 한 오지랖은 부리는 걸까. 그리고 요즘 이유식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다들 사다 먹인다. 와중에 해서 먹이는 게 어딘가 싶은데 왜 꼬투리를 하나라도 못 잡아서 안달 난 사람들 같을까. 본인이 고기라도 공짜로 줬으면 모르겠지만 나한테 그럴 권리는 없다.


산책과 시장에서 이미 너덜 해진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데 쓰리콤보로 어떤 아주머니가 불쑥 다가와 내 손을 보더니 '애 엄마 손이 아니다.' 그러고 지나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뭐라 말하려 했을 땐 이미 아주머니가 사라진 뒤였다. 이상하게도 아기 엄마가 되고부턴 허들이 낮아진 건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아주머니의 칭찬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손에 신경을 좀 쓰는 편이고 손이 곱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렇다 해도 저 말은 마치 애 엄마인데 아무것도 안 해서 손이 고운 것 같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말이다.


이 많은 일이 모두 몇 시간 만에 일어난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피해의식, 자격지심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나는 꽤 늦은 나이에 놀만큼 놀고 임신과 출산을 했기 때문에 아기를 꽤 기다렸던 입장이다. 게다가 조카들과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많아 숱한 이야기를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은 꽤 힘들고 시렸다. 죄가 많은 사람만 부모가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었다. 물론 우주보다 큰 행복은 덤이다. 사실 먼저 임출육을 한 친구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동지여, 그때를 반추하니 멀어졌다고만 생각하고 너희를 돌아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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