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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04. 2020

가끔 거짓말은 필요하다니까

나를 지키는 말

“가끔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지”

준영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이에겐 처음이 아닌 말이었다. 작년, 주먹만 꾹 쥐고 있었던 준영이가 손을 맥없이 풀어버린 날이 있었다.

 “너 엄마 없잖아”

사실만을 전달했을 뿐이라는 무심한 친구의 말 앞에서 아니라고 버티지도, 맞다 인정하지도 못하던 준영이를 발견했던 날. 멍하니 상대를 지켜만 보는 준영이를 보았다. 그날 처음 우린 손을 마주 잡고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거짓말이 때론 아주 나쁜 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이 너를 보호할 때도 있다는 것. 준영이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 곁에 선 어린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중이었다. 아빠 이야기엔 솔직해지고 싶지 않았던 11살 내가.      


내 기억엔 11살의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다. “너네 부모님도 자주 싸우지?”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면 좀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친구들의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아니, 별로, 잘 모르겠는데” 가끔 공감을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만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역시, 우리 집만 그러는 게 아니네, 싸우는 건 평범한거야.' 되뇌고 되뇌다보면 특별히 이상해 보였던 우리 집이 평범해 보이기도 했다. 평범의 울타리를 만들면 나름의 안도감이 생기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11살의 내가 만드는 편안한 둥지는 기이하게도 남들의 동의 없이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어쩌다 나오는 '아빠'에 대한 질문들은 집에 있기만 하는 아빠가 이상하긴 하다는 걸 일찍부터 알게 했다. 내가 학교 오는 시간에 집에 누워 잠을 자는 아빠는 이상한 거였다. 어딘가 나가지도 않고 푸석한 얼굴로 오후에 집에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게 다정함이 아님을,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담배 찌든내가 나던 방에서 들려오던 기타소리가 아름답지만은 않았음을 알았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집이 기울어진 줄도 모르고 아빠가 펼치려던 꿈은 멋있는 게 아니었다. 당장의 쌀, 그 땐 그게 참 아쉬웠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듣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어릴 적 난 알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참 이상했다.  


그래서 시작한 거짓말이었다.


내가 우리 가족을 보호하는 방법은 '이상한 게' 밖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거짓말.


거짓말 속 우리 아빠는 일을 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평범한 집의 가장이자 아빠였다. 가끔 보너스를 받는 날이면 치킨 한 마리를 사와서 도란도란 나눠먹는 상상 속의 아빠는 나름 포근했다. "이 시간에 아빠가 집에 계셔?" 친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놀라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수화기 넘어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엄마의 침묵이 싫어서, 나는 종종 지금 집에 아빠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냥 멀리 공원에 산책이라도 다녀오지, 그럼 불안하게 거짓말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영리하지 못한 아빠가 미웠다.


거짓말은 쉽고 간편하게 우리 가족을 보호했다. 거짓말이 노련해진 나는 가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움찔하는 것만 빼고는 괜찮았다. 가끔 학원 가방 지퍼를 잔뜩 내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잠궈줬던 경험 빼고는, 아빠 있을까봐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는 횟수를 점점 줄였던 것 빼고는, 손톱이 닳아서 조금 짧아졌던 것 빼고는, 내 이야기에 점점 가족 이야기가 사라졌던 것 빼고는. 빼고, 빼고, 빼면 괜찮았다.

 

그래서 지금은 준영이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여겼다.


꼭 준영이네 가족을 아빠, 누나, 준영이 '3명'이라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엄마 얘기가 나오면 솔직하고 당당하게 '없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가끔은 있는 척 능청스런 연기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그게 어린 너를 지키는 방법이라면 나쁜 거짓말이 아닐거라고. 도덕책에 나오던 솔직함, 당당함 따위는 준비가 안 된 어린 나에겐 닿지 않는 폭력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어쩌면 준영이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내 말을 핑계삼아 거짓말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그걸로도 좋았다. 11살의 나에겐 버팀목같은 그런 말들이 필요했다. 11살의 준영이에게 필요한 말들은 무엇일까 나를 잠시 내려놓고 준영이를 바라봤다.


함부로 이해하지 말자, 나머진 준영이가 지켜내야할 몫이란 걸 안다. 다만 지금은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앞으로 원치 않게 마주해야할 일들이 많을 걸 알기에 지금은 그저 모른채 넘어갈 수 있도록.


11살은 11살이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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