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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18. 2020

저기요, 당신도 누군가의 아버지겠지요?

아빠라는 우주는 내게 없었지만 가끔 머리맡에 초콜릿을 두고 사라졌다

노숙자에 관한 글을 쓰고 매체에 투고했다가 퇴짜 맞은 적이 있다. 지금 보면 큰 알맹이가 빠진 글이었다.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치면서도 어색함을 발견하지 못한 건 쉼표 사이, 온점 사이 보이지 않는 괄호가 있어서다. 투명 괄호는 나만 읽을 수 있는 문맥을 만들었고 남들은 알 수 없었다. 진심을 쏟아부었지만 제대로 담지 못했던 그 글은 나에겐 의미 있었지만 남에겐 가증스러운 이야기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갑자기 왜 노숙자를 생각하는 척?

어설프게 '노숙자'를 위하는 척했던 글엔 사실 내 아버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저기 차가운 길바닥에 아버지가 앉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지하철 한 구석에서 박스를 덮은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의심.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내 아버지가 집도 제대로 없을 거란 생각, 이런저런 생각에 아버지를 넣어보면 기차역 주변 지하철 통로에 아버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노숙자가 아닌 아버지에 대한 글이었던 셈이다.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대학교 1학년, 사촌언니 결혼식장에서였다. 사촌언니 결혼식을 가면 사촌언니만 볼 줄 알았던 안일한 생각 끝에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은 어릴 적 그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 벗어져 있었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앞니가 이상하게 깨져있었다. 내가 알던 게으르고 철없던 젊은 아빠는 없고 나이 든 아버지만 있었다. 도망치듯 나왔던 결혼식장을 끝으로 우린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않았다. 간간히 아버지는 술에 취해 카톡을 보내왔지만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연락은 서서히 끊겼다. 아버지란 우주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가 느꼈던 '불안함'은 절절한 슬픔이 아니었다. 화나 분노로부터 출발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시간은 엄마와 결혼생활이 유지된 10여 년 남짓에 불과했기에 쫀득하게 붙어 있는 감정 따위 없었다. 그저 '아버지'라는 존재가 여전히 실존하는 건지 궁금했다. 내 감각에 의존해서 알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라는 우주가 맥을 유지하고 있다면, 손 뻗으면 잡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내가 몰라선 안 된다는 그런 가벼운 불안함이었다.


출처 https://blog.naver.com/dolbae747


그래서 언젠가부터 길거리 중년 남자들이 지나가면 저절로 눈이 갔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헤어지고 난 후 그런 습관이 생겼다.


키가 아주 작은 남자, 풍채가 좋고 손이 큰 남자, 눈에 쌍꺼풀이 짙은 어떤 남자, 내 아버지 일리 없는 어떤 나이 든 남자들을 지나가며 살폈다. 어쩌다 보니 역에 누워 있던 남자들까지 시선에 들어왔다. 그저 닥치는 대로 주변을 주워 담고 지켜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쯤 아버지가 곁에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대략적인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깨진 이는 치료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누렇게 익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다. 벗어진 머리를 쑥스럽게 쓰다듬으며 나를 맞이했던 마지막 모습에 싸구려 중절모 하나쯤 추가되었겠지.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생활에서 몇 초간 아버지를 다듬었다. 궁금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삶의 무게를 혼자서 이고 지고 살아가던 엄마에게 못할 짓이라 여겼다. 가장이지만 가장이 아니었던 아빠는 나와 진득한 연이 없었다.


아빠가 꿈을 그리며 돈을 벌지 않는 동안 맨몸으로 사회에 뛰어든 엄마는 '돈 백만 원' 쉽게 벌지 못했다. 어느 날 비장한 얼굴로 큰방에 모여 우리들에게 "각자 살지 않을래?" 물어보던 엄마의 힘겨운 외마디를 잊지 못한다. 우린 한참을 말없이 울었고 작은 골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빠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한참을 다짐했다. 15살 어린 마음에 당장 저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빠를 쫓아내고도 싶었지만, 일주일 전 들렸던 아빠의 울음소리가 이상하게도 발을 붙잡았다. 밸런타인데이가 다 지나간 새벽, 자고 있는 우리 머리맡에 2000원짜리 초콜릿을 두고 방에 들어간 아빠는 혼자서 꺼이꺼이 울었다. 찬 기운을 몰고 왔던 아빠 잠바가 스친 탓에 깼지만 자는 척했던 난 한참 동안 아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빠의 울음소리는 귀에서 일주일을 맴돌았다. 그래서 미동도 없던 아빠 방문을 쉽게 벌컥 열지 못했다. 아빠를 쫓아낼 순 없었지만 아빠는 스스로 멀어지는 중이었다. 가족을 지킨다는 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구나. 내가 알던 '아빠'는 내가 모르는 '아버지'가 되었다.



길거리 지나가는 중년 남자가 보이면 습관처럼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저기요, 당신도 누군가의 아버지겠지요?


당신은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나요?

세상이 힘들어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꾸준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아빠니까"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어떻게 몇십 년 해낼 수 있나요?

가족은 어떻게 '온전하게' 지켜내는 걸까요?



퇴근 무렵, 아빠 또래 중년 남자들의 고단한 얼굴이 신기했다. 누구는 평범하게 지니고 있는 일상이 참 부러웠다. 택배를 힘겹게 들고 가는 남자들을 보며, 아침마다 빗자루를 쓸고 있는 경비원을 보며, 회사 건물을 나서는 회사원들을 보며, 버스를 노련하게 운전하는 기사님을 보며, 우리 아빠는 왜 아무 곳에도 평생 소속되지 못했는지(않았는지) 궁금했다. 답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빠 덕분에 나는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직업을 선택했다. 언제든 박차고 나가버릴 수 있는 일에 손을 뎄다간 꾸준히 쉬어가는 아빠처럼 될까 봐. 쉬는 건 게으름이 아닌데 한 끗차이로 작은 방에 누워 나오지 않게 될까 봐. 나와 우리 동생은 큰 꿈 보단 반복되는 꾸준함을 고려해 직업을 선택했다.


아빠라는 우주는 내게 없었지만 가끔 나타나 머리맡에 초콜릿을 두고 사라졌다. 초콜릿보단 건네는 손이 궁금했지만, 손을 뻗을 때 지을 아빠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었었다. 짐짓 모른 척 고개를 들어볼까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중년 남자들에게 고개를 돌려 질문하는 편이 더 나았다.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불안함을 해소하고 싶지도 궁금함을 풀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술 취해 온 아빠의 문자에 답장은 하지 않지만 전화번호는 바꾸지 못하는, 아직 "아빠가 없다!"라고 자연스레 말하지 못하는 나는 그냥 이런저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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