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약 네 시간을 달려 나를 비엔나에 데려다 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비엔나에서의 두 밤뿐이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지만
나는 그걸 막아내려고 애쓴다. 돌아가는 일은, 돌아가는 날 생각하면 된다.
오는 날이 장날이었다.
미리 공부한 대로 트램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올 예정이었는데
20분을 넘게 기다려도 트램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시작된 소란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갑자기 사람들의 장대한 행렬이 에너지를 뿜으며 내 눈앞에 나타난다.
마라톤 대회였다.
남,녀,노,소...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행렬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지 않는다. 비엔나 인구가 이렇게 많았던가?
아침에 체코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은 채 매서운 비바람으로 변해 있다.
사람의 행렬이 다 지나가고 트램이 다시 도시를 유영하기 시작한 건
추위에 떨던 내가 비엔나 소시지를 사서 호텔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뒤다.
꽤 많은 길거리 음식 중에 비엔나소시지를 택한 건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비엔나에 비엔나커피는 없다지만 비엔나소시지가 있으니 선택할 수밖에.
따뜻하게 구운 비엔나소시지와 갓 튀겨낸 감자튀김을, 행여 식을 새라 가슴에 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독한 술 한 잔이 생각난다. 뼛속까지 스며든 추위와 비엔나소시지와 감자튀김이라는 세 종류의 안주를 하나로 녹여 줄 뜨거운 술 한 잔.
토요일 밤이라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지만, 아까 시내로 나가면서 봐 둔 데가 있다. 수십 개의 자판기가 24시간 동안 알아서 장사를 하는 가게였는데, 그 자판기 중에 술 자판기까지 있으면 ‘정말 멋쟁이!’라고 엄지척을 해 줄 용의가 있다.
아, 정말 멋쟁이!
술 자판기가 있다. 양주, 보드카가 병째로, 콜라를 넣은 칵테일 캔, 맥주, 뭔지 모를 불그스름한 술병들... 참 종류도 다양하네? 흡족해서 흝어보고는 이것저것 아이콘을 눌렀다가 취소하고, 또 살펴보고, 다시 다른 스위치를 눌르던 끝에, 성인인증을 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아, 이런 게 제일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 본다. 그럼, 나는 어엿한 성인이고말고...'
그 귀찮은 절차를 통과하고 또 술을 골라 이것저것 골라보던 끝에...
그냥 돌아선다. 뭔가 적당하지가 않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밥상을 대하고도 허공에 정지했다가 그냥 내려진 젓가락의 모습이다. 지금의 내가.
숙소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가 원한 건 소주나 고량주였던 것 같다. 마음 속으로 그걸 원하고 있으니 알록달록 다양한 비엔나의 술병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거다.
뜨러운 술 대신 뜨거운 K드라마를 보며
아직 온기가 남은 비엔나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흡입한다.
그래, 어정쩡한 걸 택하느니 이러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