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나쁜 버릇

by 김호양이

여헹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깨닫는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수많은 이득 중 하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나의 이런 나쁜 버릇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첫째, 대충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세 시쯤’이라고 기억하는 거다.

세 시 12분!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지를 않는다.

‘Hb...이런 정거장 이름’ 이럴 것이 아니라 ‘Habalee’.

그리고 Schw...P가 아니라 'Schweden Platz’,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이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다.

좀 더 정확히 기억하면 될 것을, 처음 입력할 때 대충해 놓고는 기억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상황에 닥쳐서는 같은 것을 너 댓 번씩 다시 들여다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두 번째, (어쩌면 첫 번째와 비슷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외국어를 너무 막 한다는 것.

좋게 말하면 용감한 거고, 사실은 낯 뜨거운 거다.

그닥 어려운 문장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예상되는 문장을 한 번쯤 미리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건만, 그걸 안 하고 일단 부딪히고 본다.

의사소통이야 이럭저럭 대충 되곤 했지만 항상 뒤통수가 따가웠다.

‘크크크, 저게 말이야 뭐야?’

상대는 뒤에서 웃었을 거 아닌가!

뒤통수가 따가운 거 정도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호구가 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비엔나를 떠나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오전.

20일간의 여행 짐을 가방 안에 촘촘히 심어 넣는 고난도의 작업이 끝났다.

가방을 기차역의 짐 보관함에 맡긴 뒤, 자투리 시간을 알뜰히 활용하고자 재래시장 구경에 나선다.

"그거 별로 맘에 안 드는데요."

"그러면 반만 주세요."

"다른 걸 권해 주세요."


이런 말을 적시에, 그리고 예의 바르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잘 준비하고 갔어야 한다. 준비가 없이는 쉬운 대로 오케이만 남발하다가 한심할 결과를 얻게 되리란 것을 예상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올리브를 800그램이나 강매당해, 가방에 넣지도 못한 채 손에 들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시장에는 유럽식 절임 반찬을 파는 가게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건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절인 올리브만은 꼭 사 오고 싶었다. 마침 그 자리에서 진공포장을 해 주는 가게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산 올리브를 진공포장 해 줄 수 있다는 거지?" 하고 물었더니만

그 다음부터는 뭐, 정신 없이 수선을 떨어댄다. 이거 먹어 봐라 저거 먹어 봐라.....

- 상인 : 어떤 게 더 맛있냐?

- 나 : 음 저거, 덜 짠거!

- 상인 : 그렇지? 이거 맛있는 거야.

(주걱으로 올리브를 수북이 떠서 비닐 봉지에 마구 집어넣으며) 자, 이만큼 포장할까?

- 나 : 어어어, 너무 많은데...

- 상인 : 그래? 그럼 좀 덜지 뭐. (듬뿍 더는 척, 몇 개만 들어낸 뒤)

됐지? 자. 이제 포장한다!

- 나 : 어, 얼만데?

- 싱인 : 있어 봐, 무게를 재 볼게.

- 나 : 오, 오케이....

- 상인 : (가게 안쪽으로 봉지를 전해주며) ㅇㅇㅇ야! 이거 무게 재 봐. 진공포장이다!

진공포장된 800그램의 올리브

내가 짐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사고 싶은 거 안 사고 얼마나 참았는데

막판에 올리브를 800그램이나 샀다고?

난 딱 200그램만 사고 싶었단 말이야, 이 엉터리야!!!

(누가?)




이전 24화24. 추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