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스카프의 일생

by 김호양이

버릴까? 말까?

문제는 보푸라기다.

그것 말고는 문제가 없다. 가볍고, 따뜻하고, 부피도 작고, 아무 데나 걸쳐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여행 내내 두르고 다녔던 스카프 얘기다.


이 스카프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에

날씨가 추운 걸 모르고 나갔다가 거리에서 5000원을 주고 산 녀석이다.

그날도 덕분에 안 추웠으므로 이 스카프는 이미 제값을 다 했다.

그런데 이 스카프가, 바로 앞에서 말한 그 장점들 때문에 여행 갈 때마다 선택되었고 여행 가방에 담길 때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만 함께하는 거다.’

값이 싼 물건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보푸라기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렇다! 나는 데리고 갔다가 버리고 돌아오는 ‘헨델과 그레텔’ 속의 아버지다.

4년 전 영국에도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옷장 어디엔가 처박아 두었다가 홍콩 여행 때 또 끌고 나갔다. 그러나 여행은 내내 추웠고 비행기 안도 추웠으므로 이 스카프는 헨델과 그레텔처럼 길 위에 빵가루를 뿌리지 않았어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 베트남 여행 갔을 때도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번 유럽 여행을 갈 때도 이 스카프를 불러냈다.

자, 가자! 유럽의 4월은 간혹 추운 날이 있어서 네가 필요하단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둘게. 여행이 끝나면 이번에는 정말 작별이야.

넌 정말 착한 스카프였단다. 잊을 수 없을 거야...


4월의 유럽! 여행 내내 너무 추웠다.

가지고 간 옷을 다 껴 입고 스카프는 하루도 가방 속에서 쉬지 못한 채 열일을 했다.

중간에 스카프를 잃어버린 날도 있는데 요행히 다시 찾아 재회의 기쁨을 맛봤다.

카페에 갈 때도, 성에 갈 때도, 국경을 넘을 때도 이 스카프와 함께했다.

덕분에 보풀은 점점 더 늘어났다.

암스테르담 카페에서 스카프와 나의 한 때

마지막 코스인 비엔나. 오늘도 스카프는 내 목을 감싸고 있다. 나는 온기를 느낀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기온이 20도가 넘는다 했다.

달리고 들어야 할 짐은 그동안 주렁주렁 많아졌다.

이제는 결단해야만 한다.

이까짓 스카프 하나 짐 속에 더 있다고 뭐, 달라져?

아냐, 모든 물건에는 수명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야.


아, 정말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던 이 스카프와의 운명.......


<에필로그>

내가 이토록 이 스카프와의 작별을 두고 갈등하는 이유는 사실 이것을 버려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탓이다.

‘그까짓 보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떼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몇 년째, 이 아이를 버릴 궁리를 하고 있는 걸까? 대체 왜?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보푸라기 때문도 아니고, 짐이 돼서도 아니고, 더 좋은 스카프가 있어서도 아니고, 유행을 타서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싫증이 난 거였다.

비엔나 공항의 쓰레기통에 던져지며 스카프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사랑이 변하니?”

스카프의 일생 마지막 장면. 비엔나 공항의 쓰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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