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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ha May 11. 2016

겨울로 가는 열차 여행, 스위스 융프라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하얀 설원에서 반팔을 입고 찍은 사진을 봤어. 

한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친구에게 어딘지 물어봤지. 

스위스 융프라우래~ 멋지지 않니? 

나도 한여름에 눈밭을 거닐고 싶어!"


일 년 내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스위스의 매력이 담겨있던 사진. 친구의 환한 미소와 생기 있는 모습을 담고 있던 사진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일상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사진 한 장이 계기가 되어 스위스로 떠났다. 


창 밖으로 하이디가 뛰어놀던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동화에나 나옴직한 풍경이다. 풍경을 감상하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푸른 초원을 지나 눈을 들어 위를 보니 눈 덮인 융프라우의 위용이 서서히 드러난다. 웅장하고 험난한 설봉들이 푸른 초원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창문을 열고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내 머리를 어루만져준다. 두 눈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가득하다. 메마른 내 마음에 여유로움이 촉촉하게 스며든다. 내 마음에 평화로움이 찾아와 도시의 일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치유한다. 


행복한 열차여행은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됐다. 라우터브룬넨, 그린덴발트 등의 환승역을 지나 해발 3,454m 유럽 최고도의 역 융프라우요흐 역에 도착했다.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라 밖으로 나왔다. 바로 눈밭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빙벽, 눈과 구름에 휩싸인 산봉우리가 우리를 맞는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의 자연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의 청량감이 몸 안 가득 스며든다. 기분이 상쾌하다.


뽀드득 발자국을 남기며 느릿느릿 걸었다. 만년설 한 움큼을 뭉쳐봤다. 뭉쳐진 눈은 반짝반짝 은가루를 뿌린 듯 빛이 났다. 주머니에 넣어 가져와 더위에 지칠 때마다 꺼내 보고 싶다. 즐거운 상상에 신이 난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반팔만 입고 섰다. 햇볕이 따뜻해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얀 눈이 뒤덮여 있는 벌판에서 팔짝팔짝 뛰며 사진을 찍고 놀았다. 여름날의 겨울, 그 신비로움을 만끽했다. 


눈앞에 펼쳐진 알프스의 절경에 취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어느 새 춥다. 배도 고파왔다. 산악열차 티켓을 살 때 받아온 무료쿠폰을 가지고 신라면을 먹기로 했다. 다시 전망대로 들어와 4층 휴게실로 이동했다. 컵라면에 물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챙겨 온 햇반도 꺼냈다. 김치까지 있으면 딱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한국에서 오신 부부가 남은 거라며 우리에게 볶음김치 캔을 건네주셨다. 매콤한 김치와 얼큰한 신라면, 그리고 쌀밥. 한 상이 차려졌다.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메뉴이지만 만년설을 바라보며 먹는 맛이란 참 특별했다. 


식사를 마치고 빙하 30m 아래에 위치한 얼음궁전으로 이동했다. 온 사방이 얼음이다. 냉장고 속처럼 시원하다. 얼음동굴을 돌아다니며 맑고 투명한 얼음 조각들을 구경했다. 얼음궁전을 다 돌아보고는 융프라우요흐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터라켄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하얀 설원과 얼음궁전을 누비고 다닌 화이트 써머 여행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알프스의 하얀 눈은 묘한 따뜻함과 정서적인 충만감을 주었다. 한 여름에 즐긴 겨울의 정취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끈적끈적한 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 내 마음속 녹지 않는 은빛 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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