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한 점에 1만 원
기상 예보를 보니 바람이 초속 9미터, 파고는 약 2m다. 망했다.
이 정도면 낚시는 거의 불가능이다. 하지만 바람만 잘 피할 수 있다면 낚시 여건은 아주 좋았다. 해도 쨍쨍했고, '수온'과 '물때' 모두 만족할 만하다. 참고로 물고기는 물이 가야(조류가 흘러야) 활성도가 좋다. 즉 먹이 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5물이면 그래도 물이 잘 가는 물때이다.
예상대로 선장은 출항을 택했다. 아침 6시. 우리는 제주도 서쪽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포인트에 도착하니 웬걸? 바다가 너무 고요하다. 일기 예보가 틀린 건가? 감사하는 마음 반, 두근대는 마음 반으로 낚싯대를 드리웠다.
저 멀리 한라산 백록담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해와 마주하는 순간은 설레고, 행복하다.
낚시 방식은 타이라바. 둥글게 생긴 형형 색색의 메탈 추에 나풀거리는 고무를 바늘과 함께 엮어 고기를 유인해 잡는 방식이다. 이 기술 또한 일본에서 건너왔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약 2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라바 낚시는 주로 깊은 수심의 참돔을 잡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타이는 '도미'를 지칭하는 일본어 '다이'. 라바는 영어인 '고무'의 일본식 발음이 결합돼 '타이라바'라고 불리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참돔' 편에서 담으려 한다.
제주권 낚시는 기본적으로 수심이 섬 바로 앞이어도 100m 깊이를 오간다. 조류로 인해 채비가 조금만 흘러도 줄이 금세 200m가 풀려버린다. 그래서 바닥까지 채비를 내렸다가 다시 회수하기 위해 수백 번씩 릴을 감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팔에 알 배기기 일쑤다.
낚시를 시작한 지 채 30분이 안됐는데 배 여기저기서 참돔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와 지인은 우리에게도 곧 참돔이 찾아와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낚시를 이어갔다. 하지만 바다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는 참돔 입질 한번 찾아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낚시꾼은 마음이 조급해 오기 시작한다. 항상 머리로는 '즐기러 왔잖아' '바다 보면서 힐링하러 왔잖아'라고 생각하지만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아가 치솟아 오른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해도 옆에서 계속 참돔을 잡아 올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낚시꾼의 마음이다.
'도시 어부'에서 출연자들이 다른 사람이 고기를 잡으면 상당히 배 아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오는 행동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바다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기는 커녕 꾸짖듯이 점점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점심부터 바람이 터지면서 너울이 높아지고 있었다. 일기 예보가 맞았던 것이다. 배는 심하게 출렁였고, 바닷속 100m 아래 어떤 녀석이 잠시 내 미끼를 물었다 놨는지도 분간하기 어렵게 요동쳤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한순간도 자리에 앉지 않고 뱃전에 서서, 계속 저 깊은 바닷속 녀석을 유혹했다.
선장은 열심히 너울을 헤쳐가며 배를 몰아 고기들이 있을 만한 포인트를 돌아다녔다. 이번에는 배가 한참을 달려 차귀도 앞에 도착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부랴부랴 배에서 제일 먼저 채비를 내렸다.
'텅' 바닥 암초에 나의 메탈 채비가 닿은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나는 집중을 하고 서서히 릴을 감았다. 한 서너 번쯤 감았을까? '툭툭' 무언가가 내 채비를 몇 번 건들더니, 곧이어 낚싯대를 '와락~' 잡아끌었다.
"왔다!"
얼마 만에 받은 입질인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절대 놓칠 수 없다. 오늘 낚시의 유일한 고기다. 천천히 고기와 밀당을 하며 끌어올리는데, 선장이 뜰채를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사이즈는 어때요? 커요?"
크다고 섣불리 얘기했다가는 수면에 올라온 녀석이 나를 상당히 민망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낚싯대 휨새는 제법 휘었지만 흥분된 마음과는 다르게 입에서는 겸손이 튀어나왔다. '장하다! 나란 녀석..'
"그렇게 크지는 않은 거 같아요. 겨우 한 마리 했네요"
그런데 그 순간, '지이익~~' 하고 드렉(일정 양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줄이 자동 풀리는 릴의 기능)이 풀려나가는 게 아닌가? '어어? 뭔가 이상하다. 제법 힘을 쓴다'
약 70미터에서 끌어올리려니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녀석이 수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가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어? 생긴 게 참돔이 아니네?'
선장이 소리쳤다.
얼룩덜룩 붉은 호피무늬의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로만 듣던 '붉바리'였다. 그렇게도 수없이 낚시를 다녔지만 먹어보지도, 잡아보지도 못한 고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잡기 정말로 힘든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 귀하신 님이 내게 왔다. 올라온 녀석은 크기가 50cm에 달했다. 거의 다 자란 녀석이란다. 붉바리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크기다.
"와! 이거 1백만 원짜리다! 횟집에서 먹을 수도 없어요. 없어서. 다금바리보다 비싸요! 회 한 점에 만 원!"
선장이 나 기분 좋으라고 던진 립서비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고기가 덜컥 나에게 찾아오다니..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 이런 낚시꾼을 봤나..'
여기서 잠깐! 도대체 '다금바리'와 '붉바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최고급 생선회로 꼽히는 다금바리는 제주도 방언이고 정식 명칭은 '자바리'다. 다금바리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진짜 다금바리를 먹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많이들 다금바리로 알고 먹는 생선이 '능성어'다. 능성어는 양식이 가능해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
나는 능성어를 가끔 유료 바다 낚시터에서 잡아서 먹어 봤는데, 사실 맛은 별로였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인생에서 무릎을 꿇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생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회칼을 집어 들었다. 귀하신 옥체이니 만큼 살점 하나, 뼈 하나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스레 칼을 댔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내려는데,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뱃속이 너무도 깨끗했다. 내장을 감싸고 있는 내장 막과 갈빗살이 너무도 깨끗하고 하얗다. 뱃속이 이렇게 깨끗한 생선은 처음이었다. 청청 제주 바다 깊은 수심에 사는 놈이라 그런가?
붉바리 회가 아무리 비싸다고 얇게 썰면 안 될 것 같았다. 왠지 투박하게 썰어야 제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껍질을 벗기고 써는 과정에서 살에서 기름기가 올라왔다. 살은 굉장히 탱탱한데 기름이 올라온다.
'어? 이러면 끝판왕인데..' 대개 기름기가 많으면 살이 야들해 식감은 떨어진다. 반면 살이 탱글탱글하면 씹는 맛이 좋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두 개를 다 갖춘 것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큼직하게 한 점을 입속에 넣었다.
'음.. 뭔가 대단한 맛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다. 와인으로 치면 바디감이라고 해야 하나? 회 맛이 묵직하다. 노래미나 참돔 같이 달고 가벼운 맛이 아닌, 중후하다. 회맛을 이렇게 표현하려니 참으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비교하면 좀 더 와 닿을지 모르겠다. 붉바리 회를 반쯤 먹었을 때 소고기가 구워져 식탁에 올라왔다. 회와 소고기를 동시에 먹으면 당연히 회가 밀린다. 그런데 소고기로 향하던 사람들의 젓가락이 다시 본능적으로 붉바리 접시로 향했다. 진한 육즙의 소고기보다 붉바리 회가 매력적인 뭔가가 더 있었다는 뜻이다.
약 2주가 지난 이 순간,
깊은 밤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입속은 아직도 그때의 붉바리 식감과 풍미가 남아 있는 듯하다.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