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하는 직장인이 행복한 이유
빙그르르 –
회전문이 돌아간다.
점심 메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로비를 뒤로한 채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다. 스텔레토 힐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준다. 정오의 햇빛은 겨울 코트와 까만색의 스웨이드 구두를 내리쬐며 공격하지만, 투명한 공기 사이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살색 스타킹을 넘실거리며 흩어진다. 참으로 알맞은 날씨다. 걸음을 재촉해 길 건너편으로 향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혼잡한 거리.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명료하다. 회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오늘의 루트. 회사는 1시간 동안 섬이 된다.
채소를 먹자고 다짐했지만 이런 날씨에는 찬 국물에 적셔먹는 자루우동이 제 격이다. 여기에 곁들일 튀김을 고르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쟁반에 자루우동과 닭고기 튀김을 올리고 계산을 한다. 우동 국물에 파와 튀김가루를 소복이 담아 자리에 앉는다. 여기가 하와이 맛집이라던데 하와이에서 먹는 자루우동은 더 맛이 좋을까? 생각하며 탱탱한 면발 두 가닥을 집어 국물에 담근다. 젓가락으로 담금질을 하는 사이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려온다.
"아니, 우리 집 앞집은 복도식 아파트도 아닌데, 비 오는 날 우산을 두 개나 펼쳐 놓는다니까? 그럼 나는 한 개를 발로 뻥 차 버려.” 안쪽에 앉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어르신이 말을 꺼낸다.
"선생님, 저희 집 옆에는 쇼핑몰을 하는 젊은 부부가 사는데, 플라스틱이며 쓰레기를 문 앞에 그렇게 쌓아 둬요.” 서른 후반의 여자도 맞장구를 친다. 계속되는 민폐 주민 이야기와 우동 면을 함께 후루룩 흡입한다. 압구정에서 이사와 고고한 척하는 아주머니 이야기, 외과 병원을 하는 이웃집 이야기. 부자든 젊은 사람이라 할 것 없이 폐를 끼치는 이야기들을 듣다 식사를 마친다.
30분도 채 안되어 거리를 나왔지만 쫄깃한 면발과 솔깃한 이야깃거리에 한 층 활력이 솟아나는 것이다. 휴대폰 시계를 확인 한 뒤 걸음을 재촉한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 아침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펄을 넣은 밀크티 한 잔이 간절하다. 하지만 손목에 걸린 책들을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 읽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책이 먼저인지 차가 먼저일지 고민하다가 도서관으로 곧장 직진하기로 한다.
평일 낮 도서관은 생각보다 나른하지 않다. 책만큼 빼곡히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급하게 체크해두었던 오코너의 숲의 전망 편을 편다. 스무 여 페이지를 훌쩍 읽어 내린다. 다시 한번 시계를 보니 슬슬 출발할 시간이다. 급하게 서평 부분은 사진으로 남긴 뒤 세 권의 도서를 반납 기계에 올린다. 그만큼의 몸무게가 빠져나가는 홀 가분 한 기분이다. 비록 단편선을 다 읽지 못해 찝찝한 기분이 남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마지막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상 밀크티를 사러 가기에는 늦었다는 판단이 들어 휴대폰으로 아이스 녹차라떼를 주문한다. 샷을 추가하고 파우더를 하나 뺀다. 문득 민폐를 끼치는 세상이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주문한 음료를 종이 빨대로 쭉 들이킨다. 파우더를 뺀 것을 후회하며 커피숍을 나선다. 마지막 섬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닫히면 소리 소문 없이 그 섬은 사라지겠지.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회전문은 다시 돌아간다.
빙그르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