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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Nov 26. 2023

왕징 주재원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살던 베이징 왕징(望京)은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거리마다, 상점마다 한국인들을 볼 수 있고, 건물마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병기된 상점 간판들이 즐비하다. 한국인들을 상대하며 부동산, 슈퍼마켓, 여행사, 식당 등을 하는 조선족 동포들도 정말 많다. 사무실로 출근하면 현지 직원들 대부분이 조선족이거나 한국에서 유학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한족들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1996년 왕징 뉴타운(望京新城)이 들어서면서 한국인들이 대거 거주하기 시작해 201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인 12만 명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중국에 사는 전체 한국인의 절반 가까운 비중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도 150여 곳에 달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베이징 속 작은 한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6년 사드 사태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빠져 지금은 남아있는 한국인 수가 채 3만 명이 안 된다. 그래도 여전히 베이징 왕징은 한국인, 한국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지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중국에 사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면 한국 뉴스를 볼 수 있다. 사무실에 나와서는 현지 직원들과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회의할 수 있다. 심지어 현지 공무원들도 한국에서의 근무경력이 있어 수준급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 저녁땐 한국 식당에서 한국인 주재원들과 네트워킹한다. 물론, 내가 담당하는 업무 특성상 중국어로 된 문서와 뉴스를 종일 보고 들어야 했지만, 과장 조금 보태서 하루에 중국어를 한마디를 안 하고도 지낼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왕징이라는 지역이 한국인이 살기에 너무 편한 지역이기 때문에 왕징 밖의 세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왕징에 갇힌 주재원들이 꽤 많다. 이른바, ‘왕징 주재원’이다.     

한국인 약 3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베이징 왕징 지역


왕징 주재원이 되지 않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편리한 환경 속에서 더 불편한 방식을 취하려면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의식적으로 왼손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나 또한 베이징 주재 동안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점 중의 하나이긴 하다. 사무실에서 현지 직원들과 의사소통할 때 되도록 중국어를 쓰려고 노력하고(현지 직원들의 한국어가 내 중국어보다 훨씬 유창하기 때문에 정말 강한 의지력이 필요했다), 중국인들과 업무 연락 시 현지 직원을 통해서 하지 않고 직접 소통하려 노력했다. 현지 중국 기업들도 자주 방문하고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중국 음식도 선입견 없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주말이면 늘 의식적으로 왕징을 벗어나 보려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음에 다시 중국으로 파견 나가게 되면 아쉬운 부분들을 보완할 생각이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해외 파견의 기회는 언제나 오지 않고, 오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기에 더욱 소중하다. 한정된 기간 동안 최대한 그 나라의 면면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작은 인사이트라도 얻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현지에 같이 나와 있는 한국인들과의 유대관계도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편하고 익숙한 것에 너무 기울어버리면 3~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해외에서 근무했더라도 남는 건 한국인들과 함께한 골프와 한국식당에서의 술자리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베이징은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만날 사람들도 너무 많은 곳이다. 왕징을 조금만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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