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빠이올렛 Dec 06. 2023

베이징 속 북한

베이징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던 2019년, 남들은 의외라고 하겠지만,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이끌었던 것은 ‘북한’이었다. 나는 평소 북한에 관심이 많아 석사과정으로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논문 학기만을 남기고 베이징에 주재원으로 파견되었다. 베이징에서 생활하면서 평생 이렇게 북한과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생활 곳곳에서 북한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     


제일 신기한 것은 곳곳에 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나가보면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 국적기를 타고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상의에 붉은색 초상 휘장을 단 북한 사람들이 게이트를 통해 나오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고도 어색했다. 회사와 집이 있는 왕징 지역을 돌아다닐 때도 북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은 역시나 상의에 달린 초상 휘장 때문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네 마트에선 대동강맥주를 판매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텔레비전으로 조선중앙통신을 볼 수도 있었고, 인터넷으로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웹사이트 접속이 가능했다. 집 근처엔 유명한 북한 음식점인 ‘옥류관’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었고, 근처 798 예술구에는 만수대 창작미술관이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북한학도로서 호기심과 학구열을 자극하기 충분한 환경이었다.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동안 반드시 석사 논문을 완성해서 돌아간다.’라는 야심에 찬 목표도 정했었다.

북한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 평양은반관에서 파는 북한 음식과 대동강 맥주. 은반관에서 파는 냉면이 북한 옥류관 냉면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798 예술구에 위치한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운영하는 미술관.  두어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관람객은 없었다. 이 마중 편에는 세계 3대 갤러리인 미국 페이스 갤러리가 있다. 


그러나, 북한 정보를 접하는 건 기대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우선,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북한 관련 기사가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석사 논문에 꼭 필요한 자료를 중국 전문가들을 통해 얻어보려고 했으나,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곳곳에 북한과 관련된 것들에 쌓여있어도, 미술관 다녀온 것, 대동강맥주 마신 경험으로는 북한학 논문을 작성할 순 없었다.      

외신기자클럽에서 주최한 북핵 전문가인 토비달튼(Toby Dalton) 카네기 평화재단 핵정책프로그램 국장의 비공개 세미나를 우연히 참석한적도 있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중국은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으나, 드러내놓고 친선을 과시한다던가, 다양한 정보를 공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가장 큰 장벽이었고, 다양한 정보를 공개하기엔 그것이 초래할 예상치 못한 파급효과에 대해 매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논문에 필요한 몇 가지 자료를 중국 공무원에게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중국 조선족과 북한 전문가들의 학술모임에도 업무차 참가해 봤다. 이렇게 북한 주민을 접촉하려면 대사관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한다.


한국인으로서 제3 국에서 북한을 접해야 하는 상황으로서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자유롭게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고, 북한 웹사이트를 접속할 수 있었으나 보안법에 저촉되는 건 아닌가 두려워 일부러 청취하거나 접속한 일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논문 쓰기 이상적인 환경’이었던 베이징을 활용하기엔 너무나도 소극적이 되었고 그사이 일은 쓰나미처럼 밀려와 북한학 논문은 관심의 저 바깥으로 멀어져 버렸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주중 북한 노동자들이 2019년 12월 22일까지 송환 조치되고, 2020년 1월 말 코로나 팬데믹으로 북·중 간 국경이 완전히 폐쇄되면서 베이징에서도 북한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2023년 8월 말이 돼서야 북·중 간 하늘길이 약 3년 7개월 만에 열렸으니 지금쯤 베이징 거리에서 북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베이징은 국제적인 도시다. 그러나 그 ‘국제’라는 말에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베이징에 와서 체감하게 되었다. 같은 한반도에 존재하지만, 암흑과도 같은 미지의 영역, 어쩌면 분단으로 잃고 있는 것은 비단 민족 정체성이나 경제성장의 기회뿐만은 아닐 것이다. 더 넓게 보자면 우리 민족은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할 때 필요한 상상력에 거대한 암흑 덩어리가 70년 세월 동안 그 크기를 더욱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베이징 속 북한을 접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왕징 주재원이 되지 않으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