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허기

채워지지 않는 것들

by 보라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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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뭔가 강렬하게 먹고 싶을 때, 정말 꼭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물건을 사고 싶을 때, 그때는 심리적 허기가 컨트롤 영역 밖에 있을 때다.


문제는 그걸 인지하면서도 먹거나, 소비하는 행동을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대한 제어하려고 해 보지만 성공률이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이것도 상당히 높아진 편)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경우,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헤집고 돌아다니거나 어디서든 몇 걸음 정도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내 경우 그럴 때마다 불안과 공포감에 휩싸여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때 주로 하는 것이 무얼 먹는 것이거나, 소비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안정감이 찾아오는 것 같고(물론, 그냥 기분만 그럴 뿐 금방 휘발되고 말지만) 허한 마음도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심리적 허기가 일시적으로 잠재워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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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행위가 반복될수록 자극에 무너져서 더 큰 자극의 음식과, 더 큰 규모의 소비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것도 물론 덤으로 문제가 된다.


전에는 이렇게 한바탕 심리적 허기를 채우고 나면 밀려드는 더 큰 공허함과 무력감 때문에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서 굴을 파고 들어가 드러눕곤 했다. 하지만 상담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자책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고, 그 부분에서는 자유로워졌다.


자책은 전에 비해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계속 이런 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 부정적 사고가 한바탕 또 마음을 헤집는다. 이건 자책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넌 왜 매번 이따위야. 그렇게 머리로 잘 알면서 행동은 왜 그래? 한심하기 짝이 없네. 이런 말은 스스로에게 하지 않지만, 또 반복이네. 좀 나아진 것 같았는데 아닌 건가? 계속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난 더 나아지는 건 어렵게 되는 건가? 그러면... 내 인생은.. 하아..


자기 비하와 비난에서는 벗어났지만,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증폭되어 자기 통제력을 영영 상실하는 삶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모습을 떠올리고 한숨을 쉬게 된다.


이번 주만 해도 그랬다. 이유(핑계)를 대자면 못 댈 것은 없는 각각의 소비를 여러 건 했다. 하지만 불과 한 주 전만 해도 충분히 나는 그 충동을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1주일 만에 바로 뒤집힌 결과를 받아들이자니 힘이 빠지고 무력감이 찾아온다.


근본적으로 어떤 걸 해결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내 힘으로 당장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그걸 말이 아니라 진짜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스스로 어떻게든 근본적 문제로부터 도망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도망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나쁘게 보기만 할 건 아니겠지. 아주 무기력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다음 주는 이번 주보다 조금은 더 나아진 상태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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