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의 위시리스트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이따금 외근을 다녀오거나, 평일에 볼일 때문에 하루 휴가를 내서 밖을 다녀보면 놀라곤 한다. 이 많은 젊은(직장 다닐 것 같은 세대) 사람들은 평일 낮에 다 무얼 하러 나온 걸까?
그 질문을 한 본인처럼 외근을 다녀오는 길이거나 하루 휴가를 내서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고 볼일도 처리하고 있는 중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시기에 휴가를 내서 쉬고 있을 수도 있고, 자발/비자발적 실업 상태일 수도 있고, 프리랜서나 자영업 등 근무 형태가 다양한 상태일 수도 있다.
아무려나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 하지만 어린 코끼리를 묶어서 기르면 나중에 성장하고 나서도 묶인 줄을 충분히 끊을 만하게 되어도, 또는 묶인 끈을 풀어줘도 그냥 자라난 대로 한 곳에 있는다고 했던가?
직장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들은 그만큼 자기 상황 중심적으로 주변을 보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뭐, 나 역시도 그랬다. 특히나 외근이 거의 없던 최근 몇 년의 직장생활에서는 더욱.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더 심해졌다. 집/회사 왕복도 아니고 집/집/집...
질병휴직 전에는 마음의 고통이 불러온 온갖 몸의 질병 때문에 말 그대로 약 챙겨 먹고, 바르고, 병원 다니며 버티고 있었다. 휴직이 결정되고, 일을 쉬게 되자 거짓말처럼 하나둘씩 몸의 상태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싹 다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다가 깨서 울고, 아침에 눈뜨면 또 울고, 동네 근방으로 나돌아 다닐 체력이나 의지가 없던 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진 편이다.
자, 그럼 평일에 무얼 해볼까?
휴직자의 평일 위시리스트
극장에서 영화 보기
공원 벤치에서 해 질 녘 하늘 바라보기
오전/낮 시간에 필라테스 수업받기(일하면서 시간내기 정말 어려웠음)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기 / 도서관에서 책 읽기
조용한 카페 예약해서 다녀오기
야구장 가기, 직관!
아프면 고민 말고 바로 병원 가기
당일치기 여행 다녀오기
매일 글 쓰기
미용실 가기
대형서점 가서 실컷 둘러보기
쇼핑몰, 마트 한적할 때 여유롭게 돌아보기
당근 하기(용돈 마련 필요)
알람 없이 생체리듬 대로 일어나기(애초 7시간 수면하면 자동으로 눈뜨는 사람임)
이 중에서 이미 몇 가지는 해봤다. 계획형/실행형 인간이라;;
일에 찌들어서 주말에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쉬면서도 업무 시간 이외에 계속 울려대는 메신저에 긴장 상태로 자기 전까지 팽팽하게 신경줄이 당겨 있다가 아침에 눈을 떠서도 메일과 메신저부터 확인했던 때에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물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고 어떻게든 나를 치유하리라 큰 결심을 한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데도 계속 집에만 있으면 우울과 불안에 아예 집어삼켜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계획해서 꼭 외출하고 있다. 이것도 강박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외출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이다.
어렵게 얻은 자유니까! 소중한 자유를 제대로 누려야지.
마음속으로 각오는 하고 있다. 이러다 다시 상태가 좋지 않아 져서 무기력해지고, 씻기나 작은 외출도 큰 일처럼 느껴지는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지레 겁먹지는 않는다. 그때가 오면 또 그때 겪어내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일단은, 나가자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