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하듯
휴직을 결정하고, 회사 메신저를 휴대폰에서 삭제했다. 회사용 메일 앱도 마찬가지로 삭제했다. 하루 14시간 이상, 아니 눈 뜨고 있는 동안은 거의 내내 매여 있던 것들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뭔가 후련하고 쿨 해 보이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회사와의 연결고리는 재택근무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아이패드에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날아오는 광고톡도. 결국 며칠이 지나고 나서 메신저와 메일, 톡에 모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사이 쏟아져 있는 글들을 대충 훑고 있자니 휴직이 아니라 휴가를 쓴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루짜리 휴가를 쓰든, 며칠 이어 조금은 긴 휴가를 쓰든 언제나 회사 메신저와 메일을 하루에도 열댓 번 이상 드나들며 일을 체크했던 것처럼.
내가 없어서 회사가 잘 안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예전에는 그런 착각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연차는 아니기에 그건 망상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식으로든 회사는 굴러간다. 다만 혹시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온 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있어서 살펴본 것은 맞다. 다행히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하지 않는 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샤워하다가 문득 프로모션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혹스럽기도 하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잘 되고 있는지, 이번달 매출 목표 달성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려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만, 그만. 이제 당신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쉬세요. 일 생각 멈추기!
잠시 보지 말자고 하고 시간을 갖고 있는 사이인데 자꾸 질척거리며 sns를 염탐하는 지질한 구남자 친구/여자 친구처럼 일하는 부근을 맴도는 나 자신에게 묵직하게 일갈했다. 헛웃음이 났다. 일 하지 말라고 나 스스로 말릴 줄이야. 중독이 심하게 되었었구먼.
일을 말리는 데는 어떻게 성공했는데 문제는 또 뭘 하겠다고 위시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빽빽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였다. 놀 때도 항상 타이트하게 스케줄링하는 버릇이 어디 가랴. 그렇지만 지금 나는 그럴만한 정신적/육체적 체력이 안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쉴 때는 그냥 쉬는 거지 그렇게 힘들게 쉬면 곤란하다는 걸 머리로만 알고 있다.
할 일을 줄이고,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는지 찾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 중이다.
여유로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나, 한가한 상태를 제일 힘들어하는 나라는 걸 알기에 잘 될지 겁부터 난다.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더 그렇게 느낀다. 나한테는 꽤 하드한 목표지만, 최대한 느긋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