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 짜증, 억울함. 처음엔 이런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다 분노, 무력감, 자책, 불안. 이 네 가지 감정이 순서를 바꾸며 무한반복으로 공격을 해오고, 속수무책이 된다. 분노는 가끔일 뿐이고 대체로 무력감과 자책이 크고 항상 마지막은 불안이 되곤 한다. 시작되는 순서만 다를 뿐 대체로 비중과 마지막 감정은 동일한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면서, 내일 내가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암전. 그걸로 모든 게 끝난 상태면 좋겠다. 나는 잠들었고, 그걸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면서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지만 알람시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져 일어났다. 업무 시간은 항상 오버하여 일을 했고 평일 주말, 휴일 구분도 없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지뢰까지 있는 전쟁터에 참전한 군인 같은 심경으로 동시다발적인 업무에 대처하면서 감정 같은 걸 챙길 겨를은 없었다.
돌아보면 겨를이 없었다기보다는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군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긴장하고 책임감을 짊어지고 일이라는 걸 하는 건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기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눈물이 흐른다. 결국 글 쓰다 말고 펑펑 울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쓰고 있다.(브런치에 글 쓰다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거의 대부분 목숨을 건 전쟁터의 군인처럼 삶을 살아왔던 건 맞다. 일을 그렇게까지 했다는 것을 넘어서 나에게 있어서 살아간다는 건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고 생존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목숨을 걸만큼 비장한 각오로 버텨내야 했다. 그냥 살아지는 건 없었다.
간단하다. 살아가기 위해 써야 할 에너지가 너무 많으니까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에너지가 고갈되면 버틸 힘도 사라지니 그럴 때 나는 그냥 여기서 그만 끝났으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였던 것. 살기 위해선 죽을 각오를 해야 했던 내 삶의 기본값 세팅이 바뀌지 않으면 나는 살아 있는 내내 이렇게 힘들겠지.
힘들어하지 말고 그냥 내려놔, 다 내려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자유롭게 지내.
요즘 너무 지친 내 모습을 보고 친구가 해준 말들이다. 그래, 그렇게 지내려고 노력해야지. 그냥 되는 게 아니고 노력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게 여전히 슬프지만 그래도 노력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상황이니 어쩌겠어.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 나한테는 참 잘 안 되는 그런 것들을 이제는 연습을 해서라도, 아니 반드시 연습해서 그렇게 해야지. 나를 잘 돌보기로 결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