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새삼스러울 것 없이 자주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매번 어이가 없다. 보려고 예매해 둔 영화(일반 상영영화는 아니고 GV) 티켓을 날려버린 거다. 잊지 않으려고 캘린더에 적어두고 알림도 해놨는데 다른 일정은 한 시간, 두 시간 전 알림을 해놓고 하필 이것만 10분 전 알림만 하고 말았던 것. 알림을 받고 부랴부랴 영화예매가 취소가 될까 싶어 들어갔지만 당연히 취소 불가. 상영시간 9분 전에 취소가 될 리가 없었다.
휴직으로 어렵게 얻은 자유 시간이니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이것저것 일정을 잡아둔 게 문제였다. 캘린더 알림이 없으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혹시 또 잊은 건 없나 캘린더를 앞뒤로 돌려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쉰다는 건 너무 어렵구나 나한테.
뭔가를 하지 않고 쉬는 것, 진짜 쉰다는 걸 해본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이런 단어들이 어떤 단어가 떠오는지 생각해 보니 한심함, 게으름, 형편없음.. 이런 것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불멍이든 어떤 멍이 든 그냥 멍 때리고 있고 싶다는 생각도 가득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알기에, 사실은 두려움이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조급해진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거기서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앞이 캄캄하고 답답하다.
템플스테이를 알아보기도 하고, 당일치기 여행을 위해 기차표 예매를 했다가 취소를 하고, 온라인 독서모임에 이것저것 참여 신청을 하고, 또 뭔가를 찾아서 예약을 하고, 하고, 하고,,,
이건 쉬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쉬는 방법을 모른다. 쉬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내 차례를 기다릴 때나,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동할 때, 그 밖에 모든 일상의 작은 틈새 시간에 항상 뭔가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오디오 북을 듣거나. 쉼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음악을 들으며 다른 것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 정도인데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다. 작은 틈새 시간의 여유나 그 빈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야 돌아본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 받은 교육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시간 낭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앞세우며 혀를 차던 엄마. 뭘 하더라도 항상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평가기준이었던 걸 어릴 때는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조금은 으스대는 기분도 느꼈다. 난 너희들과 다르다는 얄팍한 우월감 비슷한 것에 스스로 취해서.
돌아보면 지금은 그저 속상할 따름이다. 놀고, 쉬고, 재밌어야 할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 시작했으니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나서도 놀고, 쉴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