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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Sep 29. 2023

추석 아침의 눈물

가족이 없는 명절


어느 이웃집 창문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 말소리..

"끼야아아악 아빠아아. 하하하하하"

"아이고 정말, 으하하하하"


잠에서 겨우 깨서 일어나 축 처지려는 몸과 마음을 붙들고 아침 약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뭐가 되었든 아침에 일어나서 반드시 글을 쓴다는 원칙을 지켜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은 내 귀에는 이웃집의 행복한 소음이 들어와 버렸다.


환기를 위해 활짝 열어둔 창문을 닫을 수도 있었지만 창문을 닫기 전에 이미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눈물이었다. 아이의 즐거운 돌고래 소리(끄이아아아~)와 아빠가 장단 맞추며 웃는 소리가 짧게 이어지는 동안 나는 아예 흐느껴 울고 말았다.


아빠가 없구나, 나는. 가족이 없구나. 혼자구나.


몇 년이 지난 일이고, 사이사이 슬픔이 밀려온 적도 있었으나 이렇게 한순간에 그리움이 습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이 없는 상태로 처음 맞는 명절도 아닌데. 작년처럼 해외여행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고등학생 시절, 대학 신입생 시절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이다. 그 집에서 추석 날 아침 혼자 덩그러니 앉아 글을 쓰겠다고 자판 위에 손을 얹고 있다가 갑자기 울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몇 번의 명절을 이렇게 혼자 보낼지는 모르겠다.


화목하기만 했던 가정도 아니고, 풍파가 많아도 너무 많아 살아 있는 게 그냥 살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생존 서바이벌 게임의 난이도 상급 수준의 고난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생일을 맞을 때면 생존자의 심정으로 아,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빠는 내내 엄마와 불화했고, 모은 돈을 허망하게 날려서 온 가족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했다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더 본색을 드러냈다. 그동안 나를 착취하고, 가스라이팅 하던 것까지는 어떻게든 참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을 휘둘러 살기 위해 엄마와의 연락을 끊었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아이와 아빠의 웃음소리에, 한때 행복했던 시절의 어느 명절을 떠올렸던 것 같다. 삶이 대체적으로 불행했다고 해서 모든 순간이 그런 것은 아니기에.



부모형제 없이 오롯이 혼자라는 이 감정에 조금씩은 익숙해져야겠지. 어쩌면 내가 이렇게 슬퍼할 수 있고, 눈물을 릴 수 있게 된 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된다.

괜찮지 않아. 외로워. 슬퍼. 이런 감정을 감추지 않아도 되니까, 울고 싶으면 많이 울어도 돼.


몇 번의 명절에서 더 울고 나면, 눈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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