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막힌 노동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휴직 절차를 받으면서 내 안에서는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모멸감, 무력감, 우울감, 분노의 뒤범벅이 된 고통스러운 감정 반죽의 밑간은 죄책감이 담당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발버둥 친 것도 따지고 보면 번아웃과 우울증에 짓눌려 일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놀 거 다 놀고, 쉴 때 다 쉬면서 무슨 성과를 낸다는 거야?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건 기본이고,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내서 해야지.
시키는 일만 잘할 거면 쭉 인턴이나 막내 사원만 하면 되겠네.
내면의 목소리, 상사의 목소리,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익숙한 목소리가 던지는 말들.
돌이켜보니 언젠가부터 일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이해하고, 증명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서서히 잊어갔던 것 같다. 일의 성취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취해있었고, 돌아오는 긍정적 피드백에 항상 목말라했다. 인정욕구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활활 타올랐다. 장시간 노동, 수면부족, 긴장 상태의 연속으로 어느새 노동 시간에 삶을 점유당해 버렸다.
일하는 동안 휴식을 하는 것도 오로지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었다.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고 쉬어야 해도 짬을 내서 다녀오거나 반차를 낼 뿐 하루를 온전히 쉬는 건 심각한 정도로 아픈 게 아니면 스스로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휴가를 내도 언제나 일에 연결되어 있었고, 하루 휴가든 일주일이든 마찬가지였다. 휴가 중 온전한 휴식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플랫폼 노동자로 일하며 세 군데의 스타트업을 거치면서 두 군데는 엄청난 성장과 상장을 했다. 일의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다. 그걸 연료로 과열된 내 인정욕구가 타들어가는 걸 스스로는 몰랐을 뿐. 기대한 만큼의 긍정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자 낙담하게 되고, 무가치감을 느끼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에 부정적 피드백이 추가되는 순간 거의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서 아주 가벼운 재가 되어 날리는 신세가 되었다.
우울증과 번아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생산성을 되찾은 인간이 되었다고 인증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에너지와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월급이 목욕값인 사실을 잊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삶의 목적이나 내 존재의 존엄성 같은 것은 뒤로 밀어버리고 오늘을 사느라 기진맥진한 생활로 다시 돌아간다면 시지프스의 형벌과 다를게 무어란 말인가. 코가 막혔던 노동자인 나는 코는 뚫렸지만 이젠 앞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 내가 지금 쉬는 것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함인 것인지, 나아가서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 능력을 정비하고 다시 노동자로 일터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기간인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