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워주는 인정욕구를 찾자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 약 처방을 받아 온다. 보통 상담 시간은 20분 내외인데 내 경우는 좀 다르다. 특히 요 몇 주는 내내 30분가량을 채우고 말았다. 대기 의자에 앉아서 멀뚱멀뚱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오지 않는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는 아, 무슨 말을 하지? 분명 이러고 있었는데 언제나 주치의 선생님 앞에 앉으면 그렇게나 많은 말들이 우수수수 쏟아져 나온다. 최근 2주는 계속 울었고, 오늘은 왜인지 울지 않았다.
오늘 상담시간에 한 이야기 중에 내가 스스로 너무 고립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을 했다. 시간은 좀 지났지만 사정이 있었고, 개명을 하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너무도 많이 저장되어 있던 연락처에서 5% 정도만 남기고 그 사람들에게만 새 연락처와 새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 후엔 일 하느라 너무 바빴고, 그러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갔다. 휴직하기 전에도 사람들과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휴직한 지 한 달 여가 된 오늘에서야, 몇몇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휴직했다고 알렸다. 이제야 연락을 돌린 이유는 내 안부와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을 여유조차 없어서였던 것 같다.
회사에 올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의 중심이 다 회사로 옮겨지게 되었다. 회사에서 이루는 성취와 그로 인해 받게 되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의 인정욕구를 채우는 유일한 것이 되어갔다. 늦은 저녁은 물론이고 새벽까지, 주말과 연휴에도 언제나 그렇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통 회사 일에 연결되어 스탠바이 상태가 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도, 샤워를 할 때도 업무 생각에 골몰했다. 번아웃은 왔다가 가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그때마다 조금은 길게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중에 업무처리를 하면서도 이렇게나마 쉴 수 있어서 다행이고, 돌아가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여전히 내게는 휴직에 대한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왜 내가 번아웃을 여러 차례 겪었음에도 이번 일로 결국 심신의 피폐로 휴직을 하게 된 것인지. 표면적인 이슈가 있었지만 그건 스모킹 건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 이외의 다른 것에서 인정욕구를 충족할 것이 전무했다는 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인정욕구는 나를 갉아먹는 인정욕구일 수밖에 없다. 인정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망가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다른 회사들을 다녔을 때는 회사 일 이외에 대외 활동을 많이 했다. sns에서 와인 동호회를 만들어서 회장으로 활동하며 모임을 이끌었고, 프리토킹 하고 사람들 만나는 게 즐거워서 영어회화를 배워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덤으로 영어 실력도 조금 늘었다.작가가 되기 위해 드라마 작가 과정도 이수했고, 작품도 써서 합평했다. 소설 또한 창작과정을 거쳐 합평을 하며 글을 썼다. 외고 청탁이 오면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써서 정기연재도 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었고, 다양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는 등,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었다. 여행 쪽 취재를 담당하면서는 항상 계절을 반발 앞서가면서 국내 및 해외의 명소들을 탐방하고 취재하면서 마감을 쳐내느라 힘들었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경험을 쌓아나갔다. 몇 가지 이유로 기자를 그만두게 되었고, 후회는 없다. 다시 기자 일을 하겠냐고 한다면 아니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플랫폼 운영관리자로 일하며 외근이 거의 없다고 푸념과 불평을 한 적이 있긴 있었다. 외근이 많으면 괜찮아질 수 있는 건가? 외근/ 새로운 자극 / 사람들과의 연결 이 세 가지가 사라진 게 큰 문제인 게 맞나?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보면 앞서 말한 세 가지가 업무에서 사라지면서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사라져 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인 것 같다. 일과 일 이외의 생활이 이렇게나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활을 해왔다니.
회사를 삶의 중심에 세워두고 그 중심대로 살아가다 보니 회사 일 이외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고, 생활도 회사 일을 닮아 버렸다. 다시 내가 건강해지려면 회사 이외의 것에서(그게 무엇이든) 전처럼 나를 채워줄 인정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해야 할 것 같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닌 채워주는 인정욕구의 충족은 상당히 중요하다.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회사생활이고 그게 전부여서는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여전히 나는 별다른 대책 없이 그저 가능한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영 엉망이다. 잘 되는 날이면 병원 진료를 받고, 만보를 걷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조용한 북카페를 찾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필라테스 수업에 다녀온다. 매일 먹는 것, 잠자는 시간, 운동하는 것에 대해 기록하고 이 내용을 가입한 온라인 모임에 공유한다. 이것이 내 심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글을 쓰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둥둥 떠다니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매주 병원에 가서 상담시간에 그간 생각한 것,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 머리에서만 맴도는 것을 글자로 옮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는 걸 실제로 매일 체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