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의지로 고치라고요?

인대가 끊어지면 의지로 고치나요?

by 보라구름

의지가 약하다.

멘탈이 약하다.

한마디로 나약해서 우울한 거다.


아니아니 아니요.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뭐, 이런 말은 이미 숱하게 정신건강학과의사와 상담가들이 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걷고, 햇빛 잘 쐬고, 푹 쉬면서 좋은 거 먹으면 낫는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 가지면 된다.

멘탈을 강화시키면 다 해결된다.


이런 솔루션이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걸 경험한다.


심지어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나 조차도 병원에서 상담과 약 처방을 받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저 솔루션에 세뇌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꽤 괜찮아진 것 같은 날에는 상담이나 약이 다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냥 다 나은 것 같고, 오늘처럼 하루를 잘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쉽게 생각한다.


위의 솔루션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저 솔루션을 수행하려면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무기력을 극복한 상태 및 체력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상태와 다시 무기력의 늪으로 들어가서 부정적 자동 사고, 부정적 예측과 인지왜곡으로 한바탕 지옥을 경험하는 상태를 하루, 또는 이삼일 간격으로 반복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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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갈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던 날의 나와 그렇지 못한 나의 간극은 극단적으로 멀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 둘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너 그렇게 잘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러냐고.
침대 밖으로 나가서 씻는 것조차 못하냐고 비난한다.
무기력한 나는 돌아다녔던 나를 탓한다.
이게 다 네가 어제 무리해서 돌아다니고 정상인 코스프레 하고 다녀서 진이 빠져서 그런 거라고.


그런 나 자신을 관조하는 또 다른 나는 그저 지칠 따름이다. 휴직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내내 초조한 마음이었다. 왜 생각만큼 빨리 우울증이 낫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갖고 싶었던 평일 자유 시간을 어렵게 얻었는데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영화 예매와 취소나 반복하고 드러누워 있는 것인지. 실컷 읽고 싶다던 책은 잔뜩 빌리고, 사서 쌓아두고 왜 읽지 못하는 것인지.


상태가 좋지 않은 어떤 하루는 눈을 떠서 일어나자마자 그냥 다 끝내고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솟구친다. 결국 다 잘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 예측에 사로 잡혀 공포와 불안에 떨다가 수십 년 전 기억까지 다 소환해 내서 인생을 망친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려버리려고 한다.


아프니까 그런 것이다. 아파서 휴직을 한 거고, 쉬면서 병을 치료하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금방 다 나아질 거였으면 휴직이 아니라 좀 긴 휴가를 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덜 불편하다.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져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마음이 부서진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이지 않으니 이게 나은 건지 더 망가지고 있는 건지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


상담을 하러 가서도 입을 열어야 하는 건 결국 환자 자신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면 줄수록 상담의 질과 약 처방의 성공률도 올라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환자는 거의 나아가는 단계에 가까워졌을 즈음 같다.


지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