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고 다시 잠 못 드는 밤
휴직을 위한 진단서를 받고 그다음 상담시간에 내가 말했다.
입면(잠드는 것)은 잘 되는데요, 꼭 자다가 4~5시간 정도 되면 깨요. 80% 정도는 다시 바로 잠들지 못하고요. 그럴 때 지금 먹고 있는 안정제를 먹고 다시 잠을 청하면 2시간 정도는 더 자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밤에 먹는 수면제는 처방받기 싫어요. 수면제를 먹고 자면 깨지 않고 통잠을 자고 일어나도 내가 푹 잤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재워진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 수면제를 먹었던 경험이 적지 않다. 다음날 무슨 일이 있어도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잠을 못 잤다고 해서 다음날 일상을 바꿀 수도 없었기에 약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기본 수면시간을 채우면서 회사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약의 도움을 받아 통잠을 자도 개운하지는 않았다. 푹 잘 자고 일어났다는 느낌은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을 더듬어도 희미하다. 아주 가끔이지만 분명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런 느낌 속에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던 때도 있긴 있었는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게 되고, 이렇다 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지 않았고 안 좋았던 신체증상도 차츰 사그라들고 있는데 딱 한 가지, 자다가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는 이 수면패턴은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아직 긴장 상태가 다 해소된 게 아니고, 인지하고 있지는 않아도 마음속을 여전히 시끄럽게 하는 것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아닌 게 아니라 항상 날짜를 잘 지켜서 하던 월경도 이번달은 아예 건너뛸 생각인지 한참을 지나도 소식이 없다.
약을 거부하고자 했지만, 아무래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일어난 날에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감정 상태도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다음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단약의 경험도 있어서 약을 먹지 않고도 누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잠이 들고, 깨지 않고 푹 잤던 것을 떠올리며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역시 요즘의 나에게는 욕심일 것이다. 자꾸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약을 먹지 말라고 외치는 걸 안다.
약 앞에서 언제나 갈등하게 된다. 약을 먹으면 지금의 불편이 사라지긴 하겠지만 그건 약을 먹어서 그런 것일 테니까 약을 안 먹으면 또다시 같은 이유로 힘들어지고, 그럼 다시 약을 찾게 되고.. 무한반복이면 이것도 약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삶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앞선다. 역시 두려운 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약은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 그리고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하루를 보내는 삶의 질도 당연히 더 좋아진다. 이렇게 선순환을 만들어 스스로 건강한 수면을 찾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약을 줄여가면서 단약을 하게 되는 게 보통의 순서다. 그런 사이클을 한두 번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역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래도 이제는 용기를 낼 때가 된 것 같다.
일단, 잠을 잘 자보는 게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