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언제까지 그럴 건지도
다음 두 가지를 알면 인내심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유
기한
아프거나, 짜증과 신경질이 솟구치거나,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알 수 없어 더 감정이 미쳐 날뛸 때 위의 두 가지는 엄청난 치료제가 된다. 이유가 뭔지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고, 기한이 있어서 언제까지는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되면 날뛰던 감정도 제풀에 지쳐서 언제 조용해졌는지 모르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내 감정은 딱 그 반대였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브런치에 글 쓴 것 외에는 부쩍 많아진 새치가 신경 쓰여 미용실에서 뿌리염색과 커트를 한 것 외에는 별달리 한 일도 없었고 하려던 일도 없었다. 점심도 평소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서 맛있게 먹었고 후식으로 커피점에 가서 따뜻한 차도 한잔 마셨다. 한번 둘러보려던 동네 공원의 행사에 갔다가 예상보다 일찍 종료되어 발길을 돌려 도서관을 가서 책을 몇 권 빌려온 게 전부였다. 특별할 것은 없는 날이었다.
감정이 날뛰고 기분이 좋지 않아 날이 서 있는 상태가 된 건 집을 나서기 전 서부터였다. 짐작 가는 원인이 있다면 대체로 규칙적이던 생리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시작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 그것도 생리 시작 예상일의 3~4일 전부터 엄청난 생리통이 있었음에도 정작 일주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는 것 정도였다. 생리증후군(PMS)라서 그런 거면 차라리 다행일까 싶지만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거고 지금으로서는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질적으로, why? 에 대한 게 명확하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타입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부분 인생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저 두 가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다. 왜 그러는 건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그걸 알면 납득과 수용, 기다림이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부정,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지만 선택지라는 게 생긴다는 차이가 있다.
내 감정의 상태, 우울과 불안의 척도가 한 가지 있긴 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 둘로 나뉜다. 글을 쓸 수 있는 상태, 없는 상태와는 또 다르다. 일단,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는 가능하다. 바로 요즘 같은 때. 반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태인데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을 읽은 뒤에는 그 내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어서 긴 글이거나 짧은 글이거나 메모의 형태로라도 남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아보니, 화장실 독서(집안 곳곳에 책을 놓아두는데 화장실에도 있음)와 같이 정말 짧은 시간의 독서 외에는 길게 집중해서 책을 읽어본지가 꽤 되었다. 그만큼 내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겠지. 빌려온 책들은 쌓이기만 하고 도통 손에 잡히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바로 뭔가 개선된 상태가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휴직기간인데 원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저만치 앞서서 달려가고 있고 나는 한참 뒤처져서 아예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고 너무 우울해하지는 말자. 대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자. OTT로 집에서 보는 것 말고, 예전에 혼자서도 극장에 주말 아침 일찍, 또는 퇴근길에 영화 보러 가고 다녀와서 감상노트/리뷰를 적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느껴보자. 꼭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주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생리주기도 불안정하게 따라갈 수 있겠지. 하지만 별다른 불편감은 없으니 만약 다른 증상이 있거나 하면 그때 가서 검진을 받아도 될 것이다. 걱정, 불안이랑 싸우며 사는 일도 참 힘들구나.
이유도, 기한도 알 수 없는 이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 받아들이는 일뿐일지도 모르겠다. 뭘 하려고 한들 나아질 것도 없으니 일단 아무것도 안 해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