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꿈 꾸기
최근 며칠은 고민거리가 있어서 수면의 질이 좋지 못했다. 12시 정도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을 지키려고 했는데 점점 밀려서 2시 반에서 3시가 되는 날도 있었다. 약의 도움 없이 잘 자면서 마음이 편했던 것도 접어두고 며칠은 약을 먹고서야 자다가 깨지 않고 수면이 유지되곤 했다. 여전히 고민거리는 다 해결된 게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보인다. 어제는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의 수렁 속에 있었기에 3시가 다 된 시각에 오디오북 두 개를 듣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시즈오카를 여행 중이었다. 아니 도쿄도 아니고, 오사카도 아니고, 홋카이도나 후쿠오카도 아닌 시즈오카라니? 꿈속의 나는 엄마랑 같이 여행 중이었는데 서로 일정이 조금 달라 입국 일자가 차이가 났지만 출국일자는 같은 일정이었다. 그리고 꿈속의 엄마는 분명 엄마이긴 했지만 외모는 전혀 현실의 엄마가 아니었다. 여하튼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시즈오카 여행을 마치고 엄마랑 귀국하는 내용이었는데 꿈속의 여행이 어찌나 실제랑 비슷한 듯 흘러갔는지 깨고 나서 한동안은 정말 시즈오카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시즈오카는 딱 한 번 혼자서 다녀온 적이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한번 소개되고 나서 한국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다녀가고 난 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녀왔다. 시즈오카는 도쿄에서 멀지 않았고 오사카와는 다르게 소도시의 매력이 있었으며, 후지산 뷰도 아름다웠다. 다녀온 뒤 소감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안은 딱 한번 가봤지만;;) 그래도 꽤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시즈오카 시의 홍보 블로그를 아직도 이웃으로 맺고 있다. 그래서 꿈에서 시즈오카를 찾은 것일지도.
꿈에서 깨어 현실 자각이 밀려들자 웃음이 났다. 아니 이제 무슨 해외여행을 꿈으로 하냐? 그렇다. 그게 현실인데 웃픈 현실이다. 어쨌거나 작년에 도쿄에 다녀오긴 했고 그때 안 쓰고 남겨둔 엔화도 아직 지갑에 얼마간 남아 있는데 지금은 작년과 상황이 달라 이 남은 엔화를 언제 쓸지는 알 수 없다는 거다. 못해도 1년 이상은 걸리지 않을까 혹은 그 이상? 그렇다고 엔화가 엄청 많이 있어서 환전해서 생활에 보태자니 그 정도는 아니라 일단 여행용 외화 지갑에 넣어두고 언젠가는 쓸 날이 오겠지 싶어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
2022년, 2023년은 유독 해외로 나갈 일이 많았다. 2022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파리 출장을 가서 호텔에서 감옥체험을 하기도 했고, 베를린 한 달 살이 겸 덴마크, 스웨덴 여행으로 워케이션을 갔었다. 돌아와서는 바로 베트남 출장을 갔고, 2023년에는 일에 치여 여행 갈 생각도 못하다가 짧은 일정으로 도쿄에 다녀왔고, 그 후로는 휴직하고 나서 제주도, 강원도 국내 여행을 한 달 동안 열심히도 다녔다. 여행을 저금이라도 한 것인지, 그렇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여행은, 특히나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하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중인데 미리 여행 경험을 저금해두지 않았으면 더 힘들었겠지.
한참 영어 공부할 때 꿈에서도 영어로 말하던 적은 있었다. 남자친구가 외국인이었을 때도 꿈속 배경이 그의 나라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해외여행하는 걸 꿈으로 꾼 건 처음인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떠랴. 이제 잠들기 전에 여행하고픈 나라를 검색하거나 사진을 열심히 보다가 꿈속에서 여행하는 걸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원하는 꿈 꾸기 스킬이 전에는 좀 살아 있었는데 여전히 살아 있는지 테스트도 해볼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