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괜찮은 오후
정수리가 타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햇빛에 무기력하게 흐물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건너편에 어떤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아마 내 뒤의 누군가를 기다리던 중이었나 보다 싶었다. 걸어가다 보니 그 여성과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 어째 나를 향해 웃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목례를 했다. 그래, 내가 흔하게 생긴 게야. 아무려나 누군가 나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며 웃어주니 기분은 좋았다.
피식 웃으며 동아일보 사옥 앞을 지나치던 중이었다. 정말이지 바람이라고는 콧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순간 누군가 나를 지목해서 바람을 쏘아댄 것처럼 훅~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로 시원하게 불어서 머리칼이라도 날렸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불었다. 그리고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거짓말처럼 두둥실 위로 떠올랐다.
놀란 내가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치맛자락은... 혀를 낼름 내밀고 달아나는 개구쟁이 꼬마처럼 내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당황한 내 앞에 백발의 노신사가 웃음 지으며 서 있었다. "괜찮소, 난 못 봤소. 아니 못 본 걸로 하겠소."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떤 여성의 환한 미소, 노신사의 미소를 뒤로 하고 나는 마포로 향했다. 덥지만 괜찮은 오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