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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r 28. 2024

아닌 척 해도 오십,
그래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한국 나이, 만 나이 이렇게 나이 계산하며 살아오다가 갑자기 한국 나이도 계산 방법이 바뀌어서 나이 셈법이 좀 복잡해졌다. 아니, 되돌아보니 서른을 넘긴 뒤부터 나이를 세는데 일부러 무심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즉답을 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병원에서 처방약을 위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제조하면 약 봉투에 나이가 인쇄되어 나오는 바람에 그걸 보고 나이를 기억한다. 음, 아직 오십은 안되었다. 


 누구나 오십은 온다. 육십도, 칠십도....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여성은 팔십도 대체로 오고 그 후는 주어진 삶대로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오십, 흔히 반백살이라고 하는 나이. 중년을 넘어 장년으로 들어가는 나이. 서른이나 마흔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터라 오십이라고 뭐 다를까 싶었는데 확실히 다르긴 하다. 오십은 뭔가 절반 이하의 느낌 더하기 내리막이라는 느낌도 있고 정신 차려,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졸지 말고 제때 일어나서 내릴 때 잘 내리라는 일갈이 들리는 것도 같다. 


 오십을 넘긴 저자는 광고업계에서 20여 년 일을 하고 은퇴해서 현재는 아파트 월세를 수입으로 팔순 노모와 단둘이 살아간다. 투석 중이고 몸이 약한 노모를 모시고 돌보며 생전 안 해본 살림을 꾸려가며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중이다. 


 월급 빼고는 다 싫었다던 회사 생활,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건 무얼까 은퇴 후 곰곰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는 솔직한 고백이 와닿았다. 하던 일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가끔은 창작의 영역도 기웃거리곤 하지만 소질이 없다고 판단한다. 깊게 뭔가 파는 타입이 아니라 넓고 얕게 건드리는 타입. 그런 자신이 아직도 뭔가를 진짜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조기 은퇴를 하고(원해서 한 것 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선택한 것 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국면에서도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를 수 있다는 게 사실은 가장 솔직한 고백 같았다.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를 보면 어떻게들 그렇게 자기 길을 잘도 찾는지. 인생 2막을 멋지게 시작하고 숨어있던 또는 묻어 두었던 재능을 꺼내 펼쳐 보이면서 기세 좋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고백, 오십이 넘어서도 내가 정말로 뭘 원하는 건지 모른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모르면 모르는 거고, 언젠가 알게 되면 하면 되는 것이지. 


 배우자가 없는 저자는 모친의 노후를 보며 늙어감의 과정을 바로 옆에서 간접 체험하고 자신의 노후를 떠올려본다. 언젠가는 혼자가 될 텐데 하는 막연한 두려움 대신 무한 긍정의 마음으로 '나만 나이 드는 것도 아닌데 뭘!' 하고 긍정적이고 쿨한 정신으로 무장한다. 


 한국도 이미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기에 오십이라는 나이는 어정쩡한 나이 일수도 있다. 60대 이상의 취업률이 중년층의 취업률 보다 높아진 시대이니 조기 은퇴를 했어도 그 후에 다시 경제활동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숫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고 삶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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