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육아

전우애를 다지다

by 보라구름

트롬 건조기, 2018년에 산 트롬 건조기는 작년부터 부쩍 말썽이었다. 건조기가 돌아가다가 띵띵 소리를 내며 물버림 표시가 뜨고,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따금 그러다가 잘 되기도 하던 것이 어느쯤엔가부터 멈춰서는 일이 잘 돌아가는 일보다 잦아졌다.



as기사님도 두세 번 불러봤고, 엘지전자 홈페이지에서 찾아본 팁 대로 에러 상황을 해결해 보려 노력했다. 인터넷에 뭔가 알아보려고 치면 솔루션은 다양하게 나오는 시대 아닌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어떻게든 건조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놈의 오동작 알림음이 나와 그의 신경을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겨울이라 옷이 무겁고 먼지가 많아 빨래하는 것도, 건조기 돌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 와중에 고양이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오줌 테러를 여러 번 하는 상황까지 몰려 이불과 매트깔개도 수시로 빨아야만 했으니 스트레스가 하늘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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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와 피곤을 등에 업고 곰처럼 신음하는 노동자 2인은 가사노동을 기계에게 부탁하는 일조차 너무 버거울 지경인데,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으니 이마저도 기댈 수가 없게 된 셈이다.



불침번을 서가면서 돌려놓은 건조기가 잘 돌아가고 건조가 완료되기까지 중간에 먼지 거름망을 빼서 깨끗하게 씻고 다시 넣거나, 좀 무거운 옷은 빼서 밖에다 걸어주면서 건조기의 타이머만 목 빠져라 보고 건조기와 방 안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잠시 이제 좀 잘 돌아가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으려고 하면 그건 아니라는 듯이 띵띵 다시 오동작음이 울려댄다. 하, 어제는 그에게 애가 울어댄다고 했다. 조기야..라고는 그의 외침. 건조기라서 조기라니. 여하튼.. 그렇게 우리 조기는 밤새 쉬를 싸고 토하고, 배고파서 울고, 짜증 나서 울고, 울고, 울고.. 20분, 15분, 30분 간격을 아주 번갈아가며 울어댔다.



와, 갓난아기 그리고 밤마다 붙어서 돌봐야 하는 개월령의 아이는 대체 어떻게 키우지 싶은 마음이었다. 잠시도 안심하고 누울 수가 없는 밤이라니요. 결국 둘이서 교대로 해도 겨우 조기를 조용히 잠재울(돌리기) 수 있었다. (찐 육아 하시는 분들 죄송, 그냥 잠시나마 비교해 봤어요)



사실 그 난리를 치고 긴 새벽을 보냈지만 아침에도 장렬하게 잔여시간 30분이 남았다는 것을 알리며 여전히 깜빡대고 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헐, 아직도 다 된 게 아니었다. 먼저 출근한 그를 대신해 다시 먼지거름망을 열고 어마무지한 양의 먼지를 털어내며 아 그래도 이만하면 잘 돌아갔구나 싶어 오히려 안도했다. 다시 버튼을 누르며 이것이 마지막으로 누르는 버튼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건조기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있다가 없는 건 상상도 못 하겠다. 두꺼운 옷 몇 벌만 꺼내서 따로 곳곳에 널어도 힘들더라는.



덕분에 전우애가 생겼다. 애도 없는데. 건조기.. 조기 전우애.



겨울에는 여기에 추가 아이템이 하나 더 늘어난다. 가습기. 아무리 열심히 세척하고 꼼꼼하게 하라는 대로 다 해도 에러코드가 뜨며 삐비빅 하고 멈춰버린다. 참을 인자를 쓰다 지칠 지경이고 이게 새로 산 가습기라는 걸 믿고 싶지 않다.



*올 겨울에 참다못해 스타일러를 들였다. 겨울 패딩, 코트, 니트 스타일링과 좀 무거운 옷들 건조 보조용으로 쓰고 있어서 조금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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