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열심히
목숨 걸고 일한다고?

by 보라구름


P20151112_220236000_549D14C8-F25D-43F9-B809-8B82B35B21DE.JPG


활자 중독자라 화장실에 가서도 모든 글귀를 다 읽는다. 모든 광고 문구부터 시시껄렁한 욕까지. 오늘은 한 건물 화장실에서 이런 안내문을 읽었다. 여하튼 저 문구도 그냥 그런 문구인가 싶었으나 분량이 꽤 길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한 면 가득 쓴 건지 궁금했다. 열심히 읽었지만 왜 이렇게 길게 쓴 건지 알 수 없었다. 내용은 별게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서 울컥했다. 아니, 죽도록 열심히 깨끗이 청소를 한다니. 왜? 대체 왜? 저렇게까지 굽히지 않으면 앞에 길게 풀어 쓴 글이 그저 요구사항처럼 보일 테니 부탁과 읍소로 보이기 위한 전략 같은 이유로 그런 표현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 나라 곳곳에서 수많은 빌딩의 화장실과 사무실을 (죽도록) 깨끗이 청소하고 있을 그분들을 그려보았다. 씁쓸하고 씁쓸한 풍경이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아파트 경비 업무를 하던 분이 바뀐 근로환경(수면시간 축소, 교대근무 시간 연장) 때문에 과로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파견,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안 되는 급여에서도 또 깎이고 실제 손에 받아 쥐는 돈은 쥐꼬리에 난 털 정도겠지.




청소하시는 분들이 죽도록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떠올려보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시절 매번 마감이면 새벽에 귀가하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은 사무실에 남아 원고를 쓰다 날이 밝기도 했다. 그때쯤 청소하시는 분들이 들어와서 쓰레기를 비우고 바닥을 치우신다. 아, 그럼 저 분들은 대체 몇 시에 집에서 나서는 걸까? 사무실 한 구석에 좀비 같은 몰골로 자판을 두드리며 앉아있는 나를 보며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혀를 차며 '어찌 저리 몸 상해가며 일을 하노.' 하고 안쓰러워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렇게 날 새 가며 일 하니 월급은 꽤 받겠지?' 했을지도.

나는 그저 마감이라는 굴레에 묶여 날을 샌 노동자였다. 시간 외 수당이나 특근 수당은 한 푼도 없었고 대체휴가랍시고 기껏 추가로 일 한 날의 반토막 정도라도 받으면 감사해야 했던 시절.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청소하시는 분이 사무실 저 쪽 끝에서 내 자리 쪽으로 이동하며 가까워져 온다. 그분이 내 책상 아래 쓰레기통을 비우러 허리를 굽히는 수고를 덜기 위해 미리 쓰레기통을 의자 밖으로 꺼내 놓곤 했다. 잽싸게 목례를 하고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하곤 했다. 마치 밤새워 일하는 모습을 들켜 부끄러운 듯. 당신의 하루가 시작되는데 나는 아직도 지난 하루를 마감하지 못 한 못난이 같았다.


창 밖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아침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왠지 모를 자괴감을 느꼈다. 그건 날 새도록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다가 동이 터올 무렵 신문이나 우유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이 집과 저 집을 들르는 소리, 점점 가까워지다가 우리 집에 툭, 신문을 떨구는 소리가 들릴 때 느꼈던 자괴감과 동일한 원류였던 것 같다.


소모되는 콘텐츠, 이렇게 쥐어짜며 쓴 콘텐츠는 한 달(아니 사실 보름, 어쩌면 열흘)이 지나면 생명을 다하고 마는 그 콘텐츠의 짧은 생명력에 무력감을 느끼며 일종의 울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잡지사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일과 목숨에 대한 에피소드 두 개가 더 생각난다. 공교롭게도 다 사진기자들 이야기다.


잡지사 사진부에서 일하던 선배가 퇴사를 하고 난 뒤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 뒤 우리 부서가 진행하는 한 프로젝트의 사진 촬영을 담당하게 되었고 클라이언트가 참여하는 첫 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사진 콘셉트를 이야기하고 프로젝트 진행 스케줄, 기타 가이드 등을 공유하는 미팅이었다. 그 날 선배는 유난히 긴장한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이제는 사진부 누구가 아닌 **스튜디오 실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선배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마치고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목숨 걸고 열심히 찍겠습니다!' 다소 과장된 톤과 표현 때문에 모두 당황했지만 다들 웃으며 그 상황을 넘겼다. 그렇다고 울 수는 없지 않나.


다만 웃지 않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는데 바로 그 선배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긴장되어 있었고 비장했다. 독립하고 첫 프로젝트라서 잘 해보려고 그러는 거다 싶었지만 지금까지 나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목숨을 건다'는 표현과 비장한 표정이 각인되어서일 거다. 그때의 선배에겐 목숨을 걸어야만 할 일이었던 거다. 그 정도의 비장함과 결의를 드러내지 않고는 앞으로의 일을 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거다.




lake-983926_1920.jpg

다른 하나는 한 매체의 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계간지를 담당하고 있었다. 계절에 한 번씩, 즉 일 년에 4번 발간하는 잡지라서 계절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발간일은 해당 계절이지만 취재는 사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해의 날씨나 기타 여건에 따라 일정을 고무줄처럼 늘려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더 늦출 수 없는 시점까지 취재를 늦추며 기다렸다. 겨우 자연이 계절 색을 드러낼 타이밍에 맞춰 취재를 갈 수 있었다. 사진을 담당할 후배와 최종 일정을 픽스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편집 일정이 촉박했다. 재촬영을 하러 올 여유도 없었고 취재하고 원고도 일간지처럼 바로 넘겨야 할 형편이었다.


급하게 출장을 떠난 나도, 후배 사진기자도 현지에서 그림이 될 만한 스팟을 재빨리 찾아내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B컷만 무수히 나오고 딱 이거다 싶은 A컷이 잘 나오지 않아서 애가 탔다. 그러다 한 스팟을 발견했는데 거긴 후배가 올라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가파르고 위험해 보였다. 무심코 아, 저기 괜찮겠다고 말은 했지만 우리가 무슨 안전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보호장구가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아쉽지만 다른 데를 알아보려고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뒤가 허전했다.


아뿔싸, 고개를 돌려 보니 후배는 그 위험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위험한데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내려와. 내가 다른 데 알아볼게.


후배는 들리는데도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안 들리는 건지 그대로 사진만 찍고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야, 너 그러다 죽어! 빨리 내려와! 내 말 안 들려?


다행히 후배는 죽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고 내가 원하는 컷을 담아왔다.


오케이 컷을 확인하고 나서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제 니 앞에서 어디 괜찮다고 말하기 무섭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서 찍는데 어쩜 그리 겁이 없냐.


후배는 싱긋 웃으며 그래도 스프레드로 깔 만한 사진 건졌으니 된 거 아니냐고 어깨를 으쓱한다. 후배는 그 매체의 출장이 처음이었다. 지면에 사진이 꽤 많이 들어가는 기획이라 사진의 힘과 퀄리티가 중요했기에 부담감과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그런 건 헤아리지 않고 나 역시 후배의 안전보다 욕심을 앞세워 저기서 잡으면 하나 나올 것 같다고 말을 뱉었던 것이다. 그래 놓고는 또 위험한데 기어이 가서 찍었다고 나무라기까지 한 내 이중성이 더 부끄러워졌다. 선배는 결의를 다진다는 의미의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고 쳐도 후배는 정말 사진 찍다가 한 끗만 어긋났어도 떨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었기에.




화장실에 붙어 있던 안내문의 문구 하나에 기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죽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프라이드를 위해 위험한 상황도 불사하건, 일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건, 그 무엇이건 간에 살려고 하는 일이다.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작지만 나의 사업을 시작하고 내 이름이 대표자명에 들어간 서류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 엉뚱한 다짐을 했다.


목숨을 걸고 이 사업체를 꼭 성공시킬 거야!
월급 받고 일 할 때보다 백 배, 아니 천 배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일을 내 명이 다 하는 날까지 착실하게 영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내가 가진 에너지와 능력을 모두 쥐어짜고 그러모아서 붓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아니었다. 잭팟이 터지듯 한바탕 와장창 요란하게 달콤하고 묵직한 코인이 쏟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조금씩 깊게, 그리고 오래 물을 긷고 싶다.


무언가를 꾸준히 오래 하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보라구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294
매거진의 이전글소방관을 동원한 제약회사 광고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