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 쾅.. 쨍그랑..콰콰쾅..쿵.. 새벽 세 시, 고요한 정적을 깨고 요란한 소리가 났어. 주방에서 들려온 소리였지. 너무 놀란 나는 곧바로 달려나가지 못하고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야 나가보았어. 찬장에 있던 것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려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깨진 유리그릇과 사기그릇이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바닥에 뿌려져 있었어. 그 사이를 지나 풀 죽은 얼굴로 눈을 살짝 위로 뜨고 내 눈치를 보며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너를 봤어.
세상에! 미오야, 너 괜찮니? 안 다쳤어?
혼날까 봐 움츠러든 너의 얼굴과 발을 대략 살펴봤어.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이리저리 튄 파편을 살피다가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발견했어. 많지는 않았고 두세 방울 정도가 묻어 있었어. 그래, 저 난리가 났는데 어딘가 살짝 긁히거나 그랬겠지. 유리 조각이 박힌 건 아닌가? 다시 너에게 가서 발아래를 살폈으나 상처가 보이지 않았어. 좀 진정하고 나서 다시 살펴보리라 생각하고 우선은 놀란 너를 쓰다듬어 진정시켰어. 혼내지 않고 달래 주자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너도 내 품에 몸을 맡겨오더구나.
별 탈이 없어 보여 바깥 상황을 수습하려고 주방에 나갔다 돌아와보니 매트 커버에 뭔가 붉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어.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분명 핏자국이었어. 네가 어딘가를 다친 게 분명해. 이번에는 제대로 샅샅이 살피리라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 밑에 네가 쭈그리고 앉아 몸을 핥고 있었다. 그래, 네가 우선 자가 치유를 하려무나. 그렇게 잠시 너를 주시하며 나도 쭈그리고 앉아서 바라봤어. 그러다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 주저앉고 말았어. 배를 핥으려 몸을 일으켜 세운 너, 네 혓바닥 아래로 드러난 배는... 시뻘건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깊게 베어 찢어져 있었어. 비명과 함께 통곡을 하고 말았지. 놀란 너를 진정시켜주던 나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어. 겁먹고, 놀란 채 죄책감에 울부짖는 나만 남아버렸어.
남 앞에서 잘 울지 못하는 나는, 종종 집에서 혼자 울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네가 곁에 다가와서 나를 달래 줬지. 앞발로 나를 톡톡 두드리거나 눈물을 핡고 몸을 비비며 내가 진정하도록 곁에서 머무르며 도와줬어. 내가 통곡을 멈추지 못하자 배에 난 피를 핥던 네가 내게로 와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미오를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정신 차려!
인터넷 검색으로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을 찾아 전화를 했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 되었고, 또 다른 동물병원을 찾아 전화를 했어. 겨우 통화가 되어 네 상태를 설명하고 이동장을 챙겨 정신없이 병원으로 내달렸어. 너는 이동장 안에서 울어댔지. 무섭고, 아프고, 놀란 너의 울음소리가 밤거리에 울릴 때마다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어.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만 앞서고 몸은 내 생각보다 너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지. 너무 서두른 탓에 병원 위치를 제대로 확인 못하고 나와 엉뚱한 병원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말았어.
다시 전화를 하고 병원까지 겨울밤에 땀이 나도록 걸음을 재촉했어. 이동장 창문으로 울어대는 네 뺨과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조금만 참자고 달래 보았지. 하지만 네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어. 택시는 모두 승차거부. 새벽에 택시로 가기엔 거리가 가까웠고, 겁에 질려 울어대는 네가 담긴 이동장과 함께 탈 수 있는 택시는 한 대도 없었어. 겨우 병원에 뛰어들어가 응급처치를 해줄 당직 의사에게 너를 보였어. 당직의사가 네 상태를 보다가 잠시 말을 멈췄어.
보호자분, 아까 전화로 3센티 정도 찢어진 것 같다고 꿰매야 할 정도라고 하셨죠? 혹시 상처 제대로 보셨어요? 이..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에요. 굉장히 심하게 깊이 베었어요. 입원도 필요하고 어쩌면 수술이 커질 수도 있어요.
의사가 네 상태를 보여주려 했지만 겁에 질린 나를 보더니 그냥 상처를 보지 않는 게 낫겠다고 설명만 들으라고 했지. 나는 등을 돌린 채 돌아서서 진료실 문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었어. 내 등 뒤로 의사가 네 상처를 소독하고 응급처치를 한 뒤 내일 오전에 수술을 들어갈 예정이라고, 오전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왔어. 너에게 눈인사라도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너는 이미 의사와 간호사 손에 옮겨져 처치실로 들어갔어.
사고가 나기 하루 전, 너는 찬장에 올려둔 간식을 먹을 생각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딛고 올라갔었어. 올라가긴 했는데 간식도 못 먹겠고, 내려올 방법도 마땅치 않아 절절매는 너를 발견하고 내가 어깨로 받아서 안아 내렸더랬지. 그때 네가 다시 올라올 거라는 걸 예상해서 깨질만한 그릇을 치우던가 아니면 그 간식을 눈에 안 띄는데 옮겼어야 했어. 그랬어야 했어. 내 부주의로 지금 넌 배가 찢어진 채 차가운 케이지 안에 누워 있어.
미안해, 미오. 미안해.
집까지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는지 모르겠어. 덜덜 떨리는 몸으로 깨질듯한 두통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온통 미오, 네 걱정이었어. 자는 둥 마는 둥 겨우 아침을 맞아 다시 병원으로 다급하게 찾아갔어. 수술을 담당할 의사이자 병원장이 엑스레이와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보여주며 너의 상태를 설명해줬어. 가봉합을 해뒀고 항생제를 정맥주사로 놨으며 수액을 맞고 있다고. 가봉합 할 때 본 소견으로는 복막까지 다친 것 같지는 않지만 정확한 건 수술하면서 개복을 해봐야 안다고 하더라. 자꾸만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아서 아니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면서 머리가 띵했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어.
의사가 말하길 너는, 마취 없이 가봉합을 하는데도 그저 순하게 잘 참고 버텼고, 목에서 채혈을 하는데도 조금 움찔거리기만 했다고. 보통 고양이는 몸에 손을 대면 앞발부터 날아오고 하악 대거나 무는 게 다반사인데 미오는 참 보기 드문 성격이라고 했어. 그래, 미오야. 너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사람에게 단 한 번도 하악질을 한 적이 없는 고양이 내 착하고 순한 고양이. 의사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었어. 침착해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하고 너를 보러 갔지.
고양이 병실 안 3층 케이지 안에 미오, 네가 있었어. 겁먹은 표정의 너는 쓰러져서 나를 바라보았어. 미오야, 내가 천천히, 조용히 네 이름을 부르자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내게로 오려했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손가락을 창살 사이로 밀어 넣어 바싹 마른 네 콧잔등을 어루만졌어. 간신히 울음을 참고 네 눈을 바라봤어. 내게로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한가득 담긴 네 눈을.
미오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수술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힘내자, 미오야.
저렇게 순둥이인 너는 지금은 얼마나 아플까, 수술을 하고 마취가 풀리고 나면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 앞섰어. 아뿔싸, 그 전에 복막이 손상된 게 아니길 바라는 게 순서구나.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기도를 했어. 제발 미오 네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봉합 수술만으로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
예정 시간보다 두어 시간 더 늦게 수술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네 경과는 좋고 복막은 손상되지 않았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너를 만나러 달려갔어.
마취가 채 풀리지 않은 너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를 보자 저번처럼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리며 내게 오려고 했어. 의사가 놀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나에게 오려고 했지만 네 다리는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끌리기만 했지. 일어서려는 너는 맥없이 무너지고. 그런 너를 달래고 진정시키려 했지만 막무가내였어. 내가 계속 있으면 너에게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잠깐만 보고 돌아 나오면서 무사히 하루가 지나 어서 네가 퇴원하기만을 기다렸지.
너는 집으로 돌아와 붕대를 감은 몸으로 처방받은 항생제를 일주일 동안 잘 먹어줬고, 붕대가 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고깔을 쓰고서도 이내 적응해서 빨리 회복해갔어. 혹시라도 상처가 덧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너를 볼 때마다 괴로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못난 나보다 너는 훨씬 더 용감하고 멋있었어. 너를 보면서 배웠어. 상황을 받아들이는 능력,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노력.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네가 가지고 있었어. 상처가 아물어 가면서 아프고 불편했을 텐데 내색도 없이 어찌나 씩씩하던지. 코타츠 아래에 네 회복실을 만들어 놓고 따뜻한 담요를 깔아 두길 잘했어. 네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였거든. 가끔 새벽에 눈을 떠보면 내 베개 옆에 네가 와서 누워 있곤 했어. 앞발을 내 머리맡으로 향하고 뒷발은 내 팔에 살짝 댄 채 잠든 너를 보면서 네가 깰까 봐 미동도 않고 그저 바라만 봤어.
푹 자고 빨리 나으렴, 미오야.
마음속으로만 속삭였어.
네 상처가 다행히 잘 아물고 수술한 곳 실밥을 제거한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린다. 부모님이 놀라실까 봐 뒤늦게 네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미오는 오히려 다쳐서 미안하다고,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그 말에 그만 또 울컥했어. 못난 내 울컥 병.
미오야,
지금처럼 씩씩하게, 멋지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