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는 소수도 아니고 학대받지 않는다
문학동네에서 택배가 왔다.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하는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시원한 느낌의 표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기자를 관두고 전업작가가 되면서 동시에 전업주부가 된 소설가 장강명. 작품이 쏟아져나온다 싶었는데 또 출간될 작품이 대기 중이라니 놀랍다. 그나저나 이 책 말미에 실린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수상작가 인터뷰를 읽다가 킬킬거리고 말았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우리는 합정역에서 만났다. 그는 오타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는 차라리 순진하고 얌전하며 모범적인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작품이 풍기는 인상과 달리 무척 선하고 부드러워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보기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답했다. 그다지 믿기지 않는 대답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열광금지, 에바 로드>는 일본 TV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열정을 공유하는, 말하자면 아야나미 레이를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츠라기 소령에게 끌리는 마음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은덕이라고 나는 막연히 추측했던 것인데, 이번에도 또 완전히 속은 걸로 판명됐다.
연희동의 한 중국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칭다오 맥주를 마시느라 방심한 틈을 타, 내가 <은하영웅전설>과 <기동전사 건담>,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그리고 무엇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 은밀한 열정을 고백했을 때, 그는 내 말을 거의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녹음을 하지 않아서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거의 이런 뜻이고 거의 이런 뉘앙스였다).
"오타쿠들은 늘 자신들이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다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오타쿠적 취향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조차도 사정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오타쿠는 소수도 아니고 학대받지도 않아요. 차라리 오타쿠가 주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상처를 부풀려서 자기연민을 즐기느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카리 신지에게 나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단둘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나는 내가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

*나도 에반게리온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에 그들이 떠올라 오타쿠에 대한 장강명 작가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다. 그건 그렇고, 문학평론가를 학대하는(학대받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소설가라니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