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간다는 것
어, 어어.. 엇!
골목에서 돌아나오던 한 할아버지가 몸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무릎을 구부리고 주저앉아버렸다. 아니, 반쯤은 엎드린 채 누워버린 상태였다. 살짝 튀어나온 배관 뚜껑에 걸려 넘어지신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일어나실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썼고, 끈에 메달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술냄새가 진동했다. 외상은 없어보여서 어쩌나,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할아버지가 여전히 반쯤 엎드린 채로 낮게 웅얼거리듯 말했다.
아니, 안 괜찮아. 죽어야지...
아마도 죽어야지 앞에는 늙으면, 이라는 표현이 생략된 것 같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의 골목에는 인적이 뜸했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안다시피 부축해서 일으켜 드리기에도, 구급대를 부르기에도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방금, 동네 뒷산 입구의 정자에 장기판을 에워싸고 할아버지 십 여 분이 모여서 열중하던 모습을 보고 난 후의 일이었다.
(늙으면) 죽어야지.. 라고 넘어져 엎어진 채 웅얼거리던 할아버지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알 길이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에 놓인 노후를 짐작조차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이 세상에 장기판만 존재한다는듯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채 하루의 대부분을 공원 정자의 장기판 앞에서 보내고 있었던 할아버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나의 지금은 과거의 내가 생각해보던 것과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다른가 되짚어 보았다. 10년, 20년 뒤의 나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곧 10월이 가고 연말이 다가오고, 다시 해가 바뀔 것이다. 머지않아 SF에서나 봐오던 2020년대가 시작 되겠지.
2016년 가을의 내가, 2026년 가을의 나를 잠시나마 생각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