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는 내가 만드는 것
가끔, 지난날을 떠올려 보곤 한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성공했을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부자였을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친구가 많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부지런했을 때는 언제였을까?
이 물음의 끝에는 언제나 자책과 원망이 뒤따른다. 당연한 결과다. 인생의 최고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 기억을 굳이 소환해서 늘어놓고는 현재와 비교한다.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비아냥대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지금 굉장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불안을 조성하고, 협박까지 하는 목소리도 가세한다.
이쯤 되면 지난날을 떠올려 보며 잠시나마 추억에 빠져 흐뭇한 미소를 지으려던 본래의 의도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비난의 독화살을 맞고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초라한 현재의 내가 보인다.
스스로와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요즘은 카페인(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때문에 우울해진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빛나는 순간들을 쭉 모 아서 살펴보면서 나는 왜 이렇지 못한가 하고 한탄하게 되기 때문. 타인과의 비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정작 더 큰 상처는 스스로와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화려했던 날의 자신과 평범하거나 혹은 의기소침해진 나와의 비교. 그것이 더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작년에는 **일도 했고, **모임도 열심히 활동했고, ** 공부도 했는데.. 이런 식의 비교. 그런 비교의 프레임에 나를 가두고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혀왔던가.
그래서, 이제는 비교의 대상을 미래의 나로 가정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미래의 나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금의 나에게 희생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래의 나, 되고 싶은 나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떠올리고 그런 미래를 가진 지금의 나 역시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어 지금의 나와 대결시키고 답이 정해진 결론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나를 위하는 길임을 깨닫는다.
내가 가장 예쁜 때는 언제나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