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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Violet Sep 08. 2019

쉽게 잊는다..
그건 공감일까

서평#1, 아몬드


아몬드

손원평/창비

p233


              

in the Lab.      




"no words for feeling"

Alexithymia, a deficit in emotional self-awareness, and deficit in empathy, which encompasses the awareness of other's emotions, are related constructs that are both associated with a range of psychopathological disorders.

   ✓lack imaginative abilities and exhibit an externally oriented thinking style devoid of introspection.

   ✓risk factor for a variety of psychiatric conditions.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psycophaty,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schizophrenia)

Katharina SophiaGoerlich-Dobre et al. The left amygdala: A  shared substrate of alexithymia and empathy. Neuroimage. 2015. 122; 20-32

https://doi.org/10.1016/j.neuroimage.2015.08.014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참석하고 있는 독서토론모임에서 발제 도서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책은 교보문고와 같은 서점의 진열대에 눈에 띄게 전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보다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선뜻 손길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첫째, 소설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소설책으로 부터 발생하는 감정 소모가 커서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 두 이유로 소설책은 자주 읽지 않는다. 소설책을 읽음으로써 타인/상황에 대한 공감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공감에 대한 능력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에게 이번 책; 소설책이자 공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아몬드'는 잔잔하지만 강한 파문으로 다가왔다.

(잔잔하지만 강한 파문이란, 말하자면 물의 파동을 발생시킬 그 무엇도 없었기 때문에 작은 나뭇잎에 의한 파동도 존재함으로써 강하고 크게 다가왔다는 의미/생각이다.)


    아몬드라는 제목은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편도체(amygdala)는 비교적 전문성을 띄어 기억하기 힘든 단어가 될 수 있다. 이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호두,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섭취하면 뇌에 좋다'라는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한 믿음에 덧 붙여, 윤재가 가진 disorder를 선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엄마로부터 견과류를 섭취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에 소설을 읽은 후에는 /아몬드 ≒ 뇌 ≒ 편도체/라는 전혀 사실관계와는 맞지 않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는 정도였다.


    나는 글을 굉장히 곱씹으면서 읽어 독서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멈칫거릴 부분이 있었지만 굉장히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 멈칫거릴 부분은, 나를 대입시켜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고 그런 부분은 대부분 표시를 해 두고 당장의 책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 글은 윤재의 시선에서, 윤재의 속도로 맞춰나갈 수 있는 정도로 매끄러웠다.

Oh, an idea hit me.

... 윤재가 감정표현 불능증이라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항상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많이 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포스트잇에 적어 책에 붙여 놓은 글은, [따뜻하다, 책이]였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마음에 차오르는 벅참을 느끼지 못해서, 그저 세상에 주위 사람과 소통하며 한 발 더 내딛게 된 윤재의 상황이 다행이라, 따뜻하다 정도의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소설 [아몬드]를 읽으며 멈칫했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p19

―어디서 남 탓이야?

살면서 매우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 인지 후에 더 이상 남 탓을 하지 않게 된다고 해도 과연 탓을 들은 그 '남'에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


p25-26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 봤다. 엄마는 아몬드를 먹으면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정말 적은 가능성 하나에도 의지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애달픔이 느껴졌다. 내게는. 그래서 우리 엄마, 사랑해요.


p113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P. J. 놀란.

(P. J. 놀란은 허구)

어떤 이유로, 얼마 있지도 않은 힘을 써 가며 '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나. 


p114

세상이 이미 죽어버린 남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안

살면서 매우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오류 2. 재단하는 입장에서는 사소하게 표정부터, 말투, 직장까지 점수를 매기고 첨언을 한다. 재단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어느 하나도 사소하지 않을 수 있으며, 환경설정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p139

―내가 왜 아파? 난 나비가 아닌데.

아파해야 하는 건가, 연민해야 하는 건가, 구해줘야 하는 건가. 


p160-161

    '愛'

―사랑.

―그게 뭔데?

―예쁨의 발견.

이렇게 간단하고 명확할 수 있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 (두산백과; 사랑). 이런 방식의 복잡한 정의를 두 개의 단어와 한 개의 조사로 끝내버린다. 연인 간의 사랑도, 전인적인 사랑도, 예쁨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데서 결국 시작하고 끝이 나는 듯하다. 


p218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정의롭게 살 자신은 없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살겠다. 이게 내가 '그런 일'들을 마주했을 때 생겨나는 불편함, 그리고 아픔과 한 최선의 타협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표지를 접했을 때, 표지 속의 사람; 아마도 윤재는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이유를 묻는다면 정확히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굳이 찾아보자면 스티브 잡스의 복장으로 인해 생긴 IT기업에 다닐 것 같다는 선입견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 다시 본 표지에는, 글쎄,.. 굉장히 어려 보이는 소년이 '덩그러니'있었다. 표정은 초탈한 듯 보였다. 눈을 아련하게 뜬 듯했고, 멀리 보는 듯했으니까. 내 머릿속에 생긴 윤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그림을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마치 p114에 나왔던 '남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안'과 같은 행위를 내가 윤재의 허락 없이 행한 꼴이 될 수도 있다. 표정 하나 읽는 데도 이렇게 어렵다.


    감정이란 매우 어려운 의사소통도구라 생각한다. 특히 감정에 눈치가 끼어드는 순간 그 수준은 수직 상승한다.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해 주지만, 기쁜 당사자와 비슷한 정도의 기쁨을 표현해야지 덜 기뻐하면 그렇게까지 기뻐해 줄 일은 아닌가 서운하네와 같은 오해를 쌀 수 있고, 과하게 기뻐하면 그 일의 카테고리에 따라 심지어는 그 기쁨이 과한 정도의 연기로 비칠 수 있다. 물론 세상 불편한 사람들의 예시이고 전후 맥락과 관계가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감정표현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공감';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의 그 이상도 이하도 불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매우 많은 집단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나에게 오는 시선들에 신경을 많이 써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나라는 개체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공감과 그에서 오는 섬세한 배려는 교육되고 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재는 그 시작점이 좀 더 비교적 기초적이었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멈칫했던 부분들,

    우리,

    그 정도는 하면서 타인의 공감을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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