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의 멋진 날
내게 손 내밀어 줄 순 없나요
용기 내 말을 걸면
그대 달아날 것 같아
어느 날 그대 날 돌아봐 준다면
감춰온 나의 얘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만 같아
나는 소리 지르느라 바빴다. 내 몸 안에서 반사적으로 괴성이 튀어나왔다. 우주에 있는 것처럼 나는 공중을 떠다녔다. 쿵쿵쿵 드럼소리와 전력질주하는 전자기타의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 찬 공연장.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무중력 상태로 음악이라는 힘에 이끌려 부유하고 있었다.
공연은 어느덧 클라이 막스에 다다랐다. 그는 무대 위에서 여느 때처럼 티셔츠를 벗어서 관중석으로 던져버렸다. 생수병의 뚜껑을 손바닥으로 쳐서 한방에 따고는 물병을 높고는 한순간에 부어 버린다.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그의 머리카락과 어깨너머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 곁에 서서 같이 공연을 즐기는 아들은
" 나 그럴 줄 알았어. 인정! ~ "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나의 밴드를 인정해 주는 6학년 아들.
남편은 공연장 소파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 내 코트와 스웨터를 들고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나는 외투, 카디건, 긴소매 티셔츠를 하나 둘 벗어던져 반팔 한 장을 겨우 입고는 방방 뛰며 연신 희한한 소리를 지른다.
"캭!!!!!!!!!!!!! "
이 소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다. 저절로. 자연의 신비 수준이다.
손을 있는 힘껏 흔든다. 10여 년 전에 산 검정바탕의 핫 핑크로 ROMANTIC PUNCH라고 쓰인 응원 수건을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다.
"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봐줘요~~~~ 사랑해요!!!!!!!!!!! 미쳤다!!!!!!!!!!!!"
정신줄은 이미 놓은 지 오래.
프런트맨 인혁은 D열까지 한걸음에 달려온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간다.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잡는다. 벌써 몇 번째 맞잡은 손인가! 역시나 이번 공연 장에서도 그의 손을 잡았다. 2023년 올해의 최고의 순간이다 싶을 만큼 기분이 너무 황홀했다.
그러고 보니 만날 때마다 퇴근길(공연 끝나고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에 허그도 참 많이 했지.
이제는 허그는 못하지만.
나와 락스타와의 허그를 처음 본 그날 그의 표정과 태도를 잊을 수 없다.
벌써 6년 전. 공연을 보고 나서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How to hug with him?"
남편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왜? 어때서? Why not?"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일도 몰랐다.
너무나 당연한 인사 아닌가? 허그가 뭐 어때서??? 반가워 죽겠는데.
미국사람 인지 조선시대 사람인지 잣대가 냉정한 남편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태도가 과하다는 의견이다.
락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타와의 만남에서 허그 정도는 아주 양반인 인사법인데 말이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우리는 일본으로 여행을 갔었다.
남편이 오랜 시간 좋아하고 있는 밴드를 보러 간 것이다.
두 명의 여자멤버와 연주자로 이루어진 펑크밴드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옷을 다 벗고 나온 거나 마찬가지인 의상을 걸치고 다리를 펜스 위에 올리고 속살을 다 보여주고 난리다. 문화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은 애써 웃고 있었지만 속은 울그락 불그락 괜한 화가 불타올랐다.
사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밴드도 무대 위에서 늘 상의 탈의하는 퍼포먼스가 있었지.
그래서 그때 남편 표정이 아주 화가 잔뜩 났었구나!
아! 이런 기분이구나!!! 쓸데없이 옷을 벗고 저 난리를 치고 있는 거지? 나 혼잣말을 계속하게 되고,
화가 엄청나게 솟구치는 느낌이란 이런 거구나!
역지사지. 그때야 알았다. 남편 미안해.
나도 당해보니 기분이 아주 많이 불편했다.
일본에서 공연을 보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내 인생밴드 멤버들과의 허그는 내려놓았다.
하이파이브가 최고의 신체적 접촉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