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 추워!"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횡단보도 앞에 다다랐다. 나는 신호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 뺨 위로 차디찬 바람이 분다.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따뜻하다. 나를 감싸 안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돈다. 뭐지? 날도 추운데 뭐 하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의 눈을 힘주어 쳐다봤다.
"What are you doing?" 내 목소리에는 추위를 핑계로 짜증이 묻어났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I’m looking for the direction of the wind. I’m trying to block it.”
"바람의 방향을 찾고 있어. 내가 막아주려고."
앗! 방금 전까지 매서운 바람에 짜증 난 나의 세포들이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샤르르 녹아내린다. 갑자기 겨울밤 차디찬 도시풍경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우리 둘만 포근한 침대에 누워 꼭 안고 있는 것 같다.
뭔가를 먹을 때면 그는 늘 첫 숟가락을 떠서 나에게 먹인다. 맛 보라는 의도인 건 알겠는데 받아먹다 보면 줄줄 흘리기 일쑤다. 음식 앞에 입을 크게 벌리는 것도 사실 부끄럽고 불편하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면 그래도 남들 눈 피해서 빠르게 먹으면 되는데 수저에 크게 올린 뜨거운 음식은 순식간에 먹어치울 수가 없다. 결국 냅킨을 꺼내 흐르는 음식을 닦아야 한다. 입에 묻히고 질질 흘리며 먹는 나에게 내민 그의 손이 너무 다정해서 거부할 수 없다.
밥을 먹고 나면 늘 나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다 먹었어?"
별거 아닌 저 말이 참 좋다.
저 문장이 끝나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응, 다 먹었어."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쪼르르 다가와 입술을 내민다. 그러면 우리는 짧은 뽀뽀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한결같이 밥을 먹고 나면 당연하게 묻는다. 일회성이 아닌 그의 태도가 놀랍다.
어느 날은 그에게 물어봤다.
"밥 먹고 나면 왜 뽀뽀하는 거야?"
대답은 심플하다.
"Because I love you."
진짜 경상도 여자로 태어나 이런 달달함은 오글거리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고 피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눈빛을 보는 게 힘들었다. 미안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두기로 했다.
밥을 먹든, 차를 마시든, 레스토랑이든, 집이든 아무런 고민 없이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다.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소소한 일상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그.
이제는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지도 6년째. 그는 무뚝뚝하고 건조한 나를 달달한 경상도 여자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