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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onglet Nov 24. 2020

회사에 다니지만,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제' 경력단절 체험기

경력단절여성 : 기혼 여성 중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직장을 그만둬 비취업 상태에 있는 여성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아이가 있냐구요?

결혼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Miss 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꼬박꼬박 출근은 하는데, '일' 이란 걸 하지 않았던 기간이 꽤 길게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달에 한번 월급도 받았구요.


이렇게만 보면 완전 꿀직장인데?

직장인들의 로망이 바로 일 안하고 월급 받는 거 아닌가요? 세상에..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었네요, 제가.


그런데 왜 나라는 사람은 이 좋은걸 누리지도 못했던 것인지...

하루하루 근심은 쌓여만 가고 무기력해지고, 뭘 해도 재미가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까지 피할 수 없었죠.


여러 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밤낮없이 전화로, 카톡으로, 메일로 개인 시간까지 클라이언트에게 다 내어주고 일에 치여살던 시기.

왜 텅빈 회사에서 나 혼자 남아 괴롭게 야근해야하나 원망하던 시기마저도 너무너무너무너무 그리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참으로 간사한 인간의 마음..)


물론, 정말 일을 '안'한 건 아닙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업무인데다, 내 영역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인지...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마치 내가 잉여가 된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업무 강도의 차이가 큰 이유도 있었지만,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 저는 쿨하지도 못했죠.


무슨 대단한 욕심으로 승진을 기대하고, 두드러진 성과를 달성하여 연봉을 높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지런히 나의 커리어를 쌓으며 내 영역을 확고히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서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충격의 조직개편, 인사발령이 있기까지 말이죠..


조직에서는 경영진의 판단과 필요에 의해 인사이동 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것은 당연합니다만, 나름 경력 13년차, 한우물만 파온 자부심과 맷집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란 사람.

십수년간 단련된 맷집은 그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몇개월간 혼란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한채 자존감만 한없이 낮아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기간을 저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경력단절 기간이라 정의했습니다. 

물론 (성격상) 새로운 업무에도 소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왕 새롭게 시작한 일 제대로 해내보고자 최선을 다했으며, 새로운 팀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꼭 나쁘지만은 않았죠. 오히려 워라밸을 지킬 수 있었고, 몸은 너무도 편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계속 회사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몹시 궁금했습니다.

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 안(못)하는지?

대체 왜 나를 전문 경력직으로 채용해놓고 전혀 다른 업무에 배치한건지?

어떤 이유로 잦은 인사발령으로 직원들의 업무 전문성을 못 살리는지?

이렇게 하면 회사는 원하는 매출 등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회사(조직)는 학교가 아니지만, 직원(구성원)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여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해야함이 마땅합니다.


그 기간동안 절실히 느꼈습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회사와 직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조직원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업무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업무강도가 세더라도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으로서 극복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시도조차 안해보고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업무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정한 성과평가와 보상이 절실하다. 치열하지 않은 직원도 문제가 있지만,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에 의한 동기부여가 없는 것 또한 문제. 어느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는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과오에 대한 징계도 마찬가지.

개인역량 강화는 필수! 그리고 각자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잊지 않아야한다. 




약 두달 전, 또 한번의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이 있어 다시 제 업무로 복귀했습니다. 강제 경력단절 기간이 종료된 것이죠.

물론 다시 매출 압박과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다시 찾은 내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 아찔했던 그 시간, 내 ‘업(job)’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걸 알게해 준 나름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결혼, 육아라는 기회가 저에게 찾아왔을 때,  또 이런 고민의 시간이 오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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