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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Jan 03. 2024

산책하는 마음, 예술하는 마음

[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1)

새해 첫날이니까, 뭔가 시작하기 좋은 날이다. 새해 계획으로 마음먹은 게 몇 가지가 있지만, 오전 일과를 끝내자마자 안양천으로 나갔다. 다른 무엇보다 내게는 ‘산책하는 마음’을 되살리는 게 필요해서다. 어느새 계절이 엄동설한의 한겨울로 진입하면서 지난 한두 달 동안 안양천으로 산책하러 나가지 못했으므로, 꺼져가는 산책하는 마음의 불씨를 되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중요한 이유 한 가지 더. 올 한 해는 ‘산책하는 마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무엇보다 커서다.      


산책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던가? 얼른 떠올려보면, 유유자적한 상태 같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우리가 산책지로 선택하는 자연환경을 마음에 옮겨 담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산과 숲, 강과 호수와 같은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우리 마음자리에도 상쾌한 바람이 불고 싱그러운 나무와 풀과 꽃이 돋아나는 상태라고 할까? 그건 어쩌면 마음에 자연상태의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산책하는 동안, 그런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제대로 느끼고 적극적으로 누리고 싶어졌다. 


안양천에 도착하니까, 나처럼 마음먹은 사람이 많은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신정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나온 이들이 자주 보였다. 역시나 새해 첫날이므로 사람들 표정이 유난히 밝았고, 걸음걸이도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내가 주로 다니는 산책코스는, 안양천 사이로 커다란 바위가 줄줄이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큰 강이 아니라도 물을 건넌다는 것만으로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생기는 모양이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징검다리의 바윗돌을 하나씩 콩콩 딛고 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기분이 든다. 희미하게나마 작은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다.


징검다리를 건너서 제방길로 올라서면, 나무숲길이 펼쳐진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걷는 동안, 문득 숨이 쉬어지는 기분에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내내 숨을 쉬었는데,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매 순간 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데도, 문득 내가 얕디얕은 호흡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폐 깊숙이 상쾌한 공기가 쑥 밀려들어 갔다 훅 나가는 느낌을 대체 얼마 만에 느껴봤던 건지, 내가 이런 맛에 산책을 다니는구나, 이렇게 멋진 일을 왜 이토록 밀어놓은 건지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걷는 건 쉽지 않았다. 평소에 걷기 참 좋은 길인데도, 지난 연말 내내 눈비가 쏟아져서인지 산책길 곳곳이 진흙 상태였다. 내 앞을 걷는 산책자들도 혹시나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흙탕물 웅덩이를 딛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는 게 보였다. 보통 때라면 나무 사이 숲길을 더 걸으려고 귀가할 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편인데, 아무래도 다른 길로 가야 할 것 같았다. 하천 바로 옆길은 말끔한 시멘트 포장길이므로 그리로 내려가는 편이 나아 보였다.


하천길로 내려가는 순간, 어디선가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렸다. 언뜻 들어도, 프로 연주자의 소리는 아닐 듯하지만, 하천이 흘러가는 물소리와 어우러져 깨나 운치 있게 들렸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주변을 살폈더니 하천 건너편 다리 아래서 어느 노인이 홀로 서서 트럼펫을 부는 모습이 보였다. 날씨가 제법 풀렸다고 해도 여전히 기온은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인지라 노인은 두툼한 장갑을 낀 채로 트럼펫 피스톤을 운지하고 있었다. 


틀린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연습을 이어가길 반복했는데, 노인의 모습 어디에도 짜증스럽거나 귀찮은 데가 보이지 않았다. 틀리거나 막힌 부분에서 잠시 멈추고 호흡과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아주 느긋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 광경을 처음 발견하고는, 아니, 왜 여기서 트럼펫을 불고 있는 건가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트럼펫처럼 큰 소리가 나는 악기는 아무래도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통주택에서 연습하기가 어려울 테니 탁 트인 공간에서 하는구나 싶었다.

 

그 순간, 산책하는 마음의 구성물에 예상치 못한 다른 요소가 섞여 들어왔다. 산책하는 마음과 예술하는 마음은 어느 지점에선가 연결돼 보여서였다. 산책하는 마음은 느긋하고 한가롭게 느껴지는 데 반해 예술하는 마음은 뭔가를 지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여서 정반대의 상태처럼 여겨지는데, 또 다른 눈으로 들여다보면 둘 다 지나치게 잘하려다가는 오히려 망치고 마는 종류의 일이 아닌가 싶다.   


여유롭게 잘 걸으려고 의식하면서 걸으면 걸음이 꼬이거나 뻣뻣해지듯이, 글을 잘 쓰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로 억지로 지어낸 퍽퍽한 문장이 나오고, 그림을 잘 그리려고 할수록 기계적인 선과 인위적인 채색이 나오는 것처럼. 두 마음 모두 여유와 느긋함을 향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안양천의 트럼펫 부는 노인> 2024.1.1 作


<징검다리를 건너는 산책자들> 2024.1.1 作 

그래서일까? 내 발걸음은 징검다리로 향했다. 언젠가 꼭 그려야지 마음만 먹어두고는, 안양천 산책을 다닌 지가 벌써 일이 년이 지나는데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산책자들’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으러 걸음을 옮겼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저기 강 건너 노인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나만의 그림을 그리러, 내 안의 예술하는 마음에 귀 기울이며 징검다리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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