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2)
길을 걷다보면, 낯선 이인데도 한동안 같이 걷게 되는 이가 있다.
가는 방향이 같고, 보폭도 고만고만하고, 관심사도 엇비슷하여 나란히, 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로 꽤 오래 함께 가게 되는 이가 있다. 이런 상황은 산책 중에 더러 있어서 대부분 잠시 그러다가 마는데, 어떤 경우엔 꽤 오래 같이 걷게 되어 괜스레 신경쓰이기도 한다. 차라리 내가 먼저 앞서가거나 걸음을 멈춰서 어색한 동행을 끝내고 싶은데, 하필 상대도 같은 마음인지 또 비슷하게 걸음을 멈추거나 보폭을 빨리해서 결국 또 나란히 걷게 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황도 겪기도 한다.
어색한 동행의 시간이 겹치다 보면, 상대에게 은근히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대체 어디까지 같이 걷게 되나 한번 두고 보자, 혹은 이런 것도 무슨 인연이 있어서 그러려나 하여 계속 걷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 산책길에서 바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
겨울나무를 구경하며 안양천 제방길을 걷다가 오금교 직전에서 하천을 바라보며 걸으려고 다리 아래를 내려갔다. 그때부터 어디선가 내 앞에 나타난 아주머니는 줄곧 내 앞에서, 혹은 내 뒤에서 걸었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내가 멈춰선 지점에서 엇비슷하게 걸음을 멈췄고, 내가 빨리 걸을 때도 같이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다가 고척교가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그야말로 이렇게 같이 걷는 데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낯설고도 어색한 동행을 즐기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고척교 바로 아래에서 아주머니와 동행이 이어지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강아지들 때문이었다.
안양천 주변에는 그야말로 산책을 나온 수많은 강아지를 만날 수 있는데, 아주머니나 나나 두 사람 모두 어디서든 강아지를 보면, 방긋 미소가 절로 나오고 걸음을 멈추게 되는 애견인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 안 되는 짧고 어색한 동행 동안이지만, 나나 아주머니는 견주와 신나게 뛰거나 걷는 강아지에게 정신이 팔려서 귀여운 강아지 쪽으로 걸음을 옮기거나 예쁜 강아지를 쳐다보느라 걸음을 멈추거나 걸음이 느려지곤 했던 모양이다.
고척교 아래에서 내 앞을 걷던 아주머니가 경쾌하게 통통 걷는 푸들에게 아이쿠, 너무 예쁘다고 손을 흔들자, 푸들이 신이 나서 아주머니에게 와락 다가왔다. 견주도 기분이 좋았던지 처음 보는 낯선 이가 푸들을 쓰다듬고 껴안아도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고, 진짜 밝고 건강해 보인다고 푸들 강아지를 예뻐라 하며 셋이서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잠시 후, 푸들 강아지와 견주가 가던 산책길을 이어가고, 아주머니와 내가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나 나나 강아지를 보통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동시에 느꼈던 나머지 그때부터는 어쩌다 동행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눈물이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일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간 우리 강아지가 너무 생각나서요."
“아, 그랬군요. 저희 강아지도 한 100일 전에, 지난 9월 말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세상에! 얼마 안 됐으니 참 힘드시겠어요. 여기 안양천 오면 더 생각나죠?"
"네, 아무래도 자주 산책 나온 데니까 더 그렇긴 하죠."
그때부터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러 정류장까지 걸어갈 때까지, 우리의 동행이 허락된 시간 동안 먼저 떠나보낸 토리와 라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다정했는지, 얼마나 환하고 따뜻한 마음을 우리 가슴 아래 구들장에다 남겨놓고 갔는지, 처음 본 사람이 아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슬픔과 그리움에 공감했다.
낯선 아주머니와 어쩌다 동행은, 요즘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슬픔과 그리움을 나눌 우정의 시간이었다. 짧은 10여 분의 만남으로 건네받은 따뜻한 온기로, 유난히도 춥고 쓸쓸한 이번 겨울을 조금이라도 덜 힘겹게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