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공원과 다정한 친구 되기(3)
“선유도는, 아낌없이 주는 곳인 것 같아요.”
옛 전통건축물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선유도에서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인 ‘선유정’에서 강 건너 맞은편의 ‘망원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며칠 만에 비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환하게 내리쬐는 청명한 날씨가 되었다. 한강의 물결을 따라 햇빛 조각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자기들끼리 유쾌한 수다를 떨며 손뼉이라도 치는 듯했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공원을 거닐며 선유도공원이 버려진 폐정수장에서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역사와 공원에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 <선유도 이야기정원>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마지막 탐방 코스인 선유정에서 가이드가 말한 ‘아낌없이 주는’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일면서 머릿속으로 어떤 상상이 펼쳐쳤다. 그러니까 우뚝 솟은 육지의 봉우리가 섬이 되는 과정이 떠올랐다.
옛날 옛적, 고양이산 또는 굉이산으로 불렸던 선유봉은 한강 한가운데에 깎아 세운 듯 우뚝 솟은 돌봉우리였다고 한다. 겸재 정선이 양천 관아에 현감으로 부임했던 시절, 한강의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여덟 곳의 명승을 그린 <양천팔경첩(楊川八景帖)>에 등장할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산이었다. 중국에서 사신들이 오면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뱃놀이를 즐기기 위해 한 번쯤은 꼭 들르던 명소였다고도 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선유봉은 빼어난 경치의 명승지였다. 그러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주변에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자, 선유봉을 허물어 한강변에 둑을 쌓았다. 그렇게 채석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선유봉의 암석들은 여의도비행장과 김포비행장, 인천으로 가는 도로 건설 공사용으로 끊임없이 깎여나갔고, 1962년 양화대교를 건설하면서 더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선유도 주변의 모래밭은 강변북로를 건설하는 데 파헤쳐졌고, 파괴된 선유봉 자리에 옹벽을 쳐 지금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선유봉이 선유도가 되는 동안, 사람으로 치면 네 번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셈이다. 100년 전만 해도 풍광이 빼어난 명승지로 사랑받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채석장으로 사용되며 봉우리의 암석과 주변의 모래를 빼앗겼고, 마침내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잃은 채 섬이 되었다. 1978년부터는 정수장이 들어서 서울 시민의 식수원으로 쓰였고, 2000년 즈음 남양주에 대규모 강북정수장이 들어서면서 낡은 선유도정수장은 문을 닫았다. 그렇게 정수장으로서의 세 번째 삶도 막을 내렸다. 이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정수장의 구조물과 건물을 최대한 재활용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공원으로 네 번째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선유교를 건너 양화한강공원의 편의점 근처 벤치에 앉아 바로 맞은편의 선유도를 바라보며 한강라면을 먹었다. 예전의 선유봉은 요즘 아파트 15층이 넘는 높이, 해발 40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우뚝 솟은 봉우리가 깎여나갔다니,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는 파괴와 망가짐이 존재하는구나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근래 들어 내 안에서 선유도공원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자라고 있었기에, 어떤 이의 기구한 삶의 내막을 알게 된 것처럼 안타까움을 넘어 서글픔이 밀려왔다.
점심식사 후 다시 선유교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와, 봄이 오는 흔적을 찾으며 느긋하게 걷다가 어느 벤치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곳은 예전에는 약품침전지로 사용되었다가 오늘날에는 공원의 수질정화원 시설이 된 곳인데, 선유도가 품고 있는 여러 면모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선유봉의 암석을 깎아 만든 양화대교와 과거 선유도정수장의 시설, 햇빛을 튕겨내며 반짝이는 한강과 푸르게 봄기운이 번져가는 나무와 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내가 마주 보고 있는 선유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풍경을 그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본래의 자아 그대로 남아 있기가 어렵다. 살아낸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 안의 무엇을 내어놓거나 빼앗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아를 이루던 단단한 암석은 잘게 부서지고, 그 조각들은 어느 날은 누군가가 건너갈 다리가 되고, 어느 날은 다른 이가 마실 물을 길어 올리는 식수원이 된다. 그렇게 한 사람도 한 생 안에서 여러 형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아가 부서진다는 건 그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멀리 퍼져나가는 일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나를 떠나 더 넓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내가 자주 지나가는 양화대교가, 실은 선유도 이곳과 다를 바가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