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공원과 다정한 친구 되기(2)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오전에 신촌에서 일정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양화대교로 진입하던 순간, 겨우내 만나려고 마음먹었던 친구를 보려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버스에서 내렸고, ‘선유도공원’이라고 적힌 입구로 들어섰다.
예전에도 이 공원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공원과 친구가 되어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와서인지, 그저 혼자만의 마음인데도 입구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괜스레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사람을 만날 때도 늘 그랬다. 특별한 의도를 품고 만나려 하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평소처럼 그저 산책하듯 걷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자리가 보이면 어반스케치나 한 장 그려보자 싶었다.
느즈막히 갔지만 공원 곳곳을 오래 천천히 걸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몰랐던 조급한 마음이 어느 순간 고요히 가라앉았다. 모나게 들떠 있었는지도 몰랐던 호흡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걷다 보니 그제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늘 그렇듯 3월 초의 세상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과 이제 막 시작되는 봄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날짜를 지우고 공원을 하나의 풍경으로만 읽는다면, 누런 풀은 흙바닥에 메마른 채 누워 있고 나뭇가지는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퍼석해 보였다. 그런데도 바람은 여전히 차가우면서도 한결 순해져 있었고, 실눈을 뜨고 가만히 바라보면 저 멀리 바람 따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마다 노란 햇볕이 번져가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했다. 공원에서 봄의 기운을 찾는 일은, 다른 이들보다 한 발 앞서 봄을 마중 나가는 것 같아 즐거웠다.
스마트폰을 꺼내 초봄의 은은한 풍경을 담으려고 몇 번 셔터를 눌렀지만 금세 손이 시려왔다. 아무래도 아직은 야외에서 어반스케치를 하기엔 이른 듯했다. 산책만 하고 돌아가도 괜찮았지만, 오늘은 지난겨울 내내 마음먹고 나온 첫걸음이었다. 무엇이라도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공원 안의 카페 ‘나루’에 가서 양화대교를 그릴까 했지만, 그쪽 창가 자리는 만석이었다. 결국 다른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해질녘에 그림을 시작한 탓에 주변은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카페 조명은 생각보다 어두워서 내가 지금 무슨 색을 칠하고 있는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현장에서 보고 그린다는 일은 본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닥친 상황까지 함께 받아들이며 그리는 것, 어쩌면 현장에서 그린다는 일의 묘미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어쨌든 스케치를 붙들고 있었다.
카페를 나설 무렵, 공원 곳곳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낮의 선유도공원은 자주 와봤지만 밤의 선유도공원은 처음이었다. 공간과 지형은 익숙한데도, 공원은 전혀 다른 얼굴과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낮에 공원으로 들어왔던 나도, 밤의 공원을 통과하며 제법 다른 사람이 되어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