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의 교환학생은 나의 로망이자 도망이었다.
유럽 배낭여행은 암흑 같던 수험생활을 버티게 해주며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도서관에서 공부는 안 하고 여행 에세이를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 책 속의 유럽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이왕 가는 거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대학생들의 ‘특권’이라고 볼 수 있는 교환학생이 있으니 대학교에 입학해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상 교환학생을 신청한 이유는 달랐다. 온갖 기대를 안고 시작한 대학교 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고등학교 때처럼 교수님은 혼자서 이야기하고, 학생들은 받아 적고, 시험 범위를 달달 외우고 성적에 따라 학점이 갈렸다. 분명 대학교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저 조금 더 자유로운 고등학교 느낌이었다.
나는 도피를 선택했다. 더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고, 휴학하고 집에서 눈치 보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교환학생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교환학생 전까지 계속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적응이 되더라. 학과 외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술독에서 빠져서 술도 열심히 마시고 잘 지냈다. 단지 넓은 세상으로 나가 내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면 이건 너무 포장인가?
21살 나이에 나 홀로 유럽으로 떠났다. 갈 때는 몰랐는데 생활하며, 유럽을 여행하며 한 번도 나보다 어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린 게 참 무모하고 그래서 용감했다.
이 책은 그렇게 출발한 다섯 달 유럽살이의 에피소드, 느낀 점들을 적은 것이다. 소소하고 조금 황당하면서 유쾌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하지만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다시 보니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스무 살 때부터 매년 연말, 짧은 감상과 함께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린다. 내 곁에서 나를 볼 때는 몰랐는데, 일 년 치 느낌을 쓸 때 전보다 반 뼘 정도 자란 게 느껴졌다. 그 후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그게 한 번에 확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벌써 20대의 4번째 해가 지나간다. 현실에 조금 더 체념하고, 조금쯤 마음 그릇이 넓어진 내가 있다. 그래서 전보다 시간이 가는 게 아쉽지 않다. 앞으로 더 나은 내가 될 것을 알고 있기에 미래가 조금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