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1

Yuki no hana - Nakasima Mika

by Virginia blend

한 여름에 찬바람이 불어올 무렵 늦가을의 계절이 다가올때마다 늘 의식처럼 듣는 노래를 틀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왜 이 글을 쓰기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꽤 지난 시점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정리하고 싶었던 걸까.


나의 인간관계에서 나는 꾸준히 오래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저 매 순간 학교든 일이던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과거의 인연들을 붙잡을 여유를 남겨두진 않았다. 그래서 늘 초등학교 동창이나 몇 십년이 지난 인연들과 늘 꾸준히 만남을 갖는 다른 이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들에게 먼저 연락을 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과거를 지우고 싶거나 부끄럽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더 조금만 더 나아가는 삶을 살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의 인연들과 멀어진 것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져서 현재의 바쁨과 분주함이 의도적인 관계의 거리두기 처럼 보여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혼자서 적는 글들은 꽤 어둡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밝고, 명랑하고, 열정적이다.

이 괴리가 아예 틀린 것은 아닌게,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사람들과 뒤엉켜있는 생과 사를 넘나들어야하는 숭고한 일이지만, 반면 그 일의 일부는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고 털어놓아서는 안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오늘도 그런 일을 하는 하루 중 하나였다.


"IED! 오른쪽 도로로 이탈 !"


뒤쫒던 검은 차량이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 앞서 인솔하던 앞차가 비틀렸고, 튀어 올랐다.

내가 타던 차량의 운전자는 반사적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고, 바로 뒤이어 연이은 폭음이 들렸다.

엄청난 굉음이 들리고 난 후에는 차체가 공중에 떠있는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내 눈에 잔상으로 남아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터널 앞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어떤 기전으로 조수석에 탄 내가 차량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의식을 잃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짧은 어둠 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기억을 잃기 전 들렸던 굉음과는 달리 고요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봤을 때에는 피 냄새, 연기 냄새, 아스팔트의 열기가 어우려졌고, 부상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러 몸을 일으켰다.


내가 탄 차량의 운전사는 이미 맥박이 없었다.

우리가 해야하는 임무의 특성상 우리는 서로의 임무만을 알고 있을 뿐 이름을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콜사인으로만 알고 있던 사이지만, 우리는 꽤 자주 여러 임무에서 마주쳤고, 보통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대다수의 운전자들이 반사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것과 달리 그는 오른쪽으로 꺾어 아마도 터널 밖 도로 곳곳에 설치된 폭발물로 인한 파편들을 자신이 막아낸 것이었으리라.

그를 위해 성호경을 긋고, 아무도 없지만 사망선고를 해주었다.

이렇게 또하나의 이름없는 별이 차곡차곡 쌓여 추가되겠지.


이미 반파가 된 차량의 트렁크에서 의무물자가 담긴 가방을 꺼내 생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찌그러져 열리지 않는 대시보드를 차량의 잔해로 쳐서 부순 다음 안에 보관했던 소총을 챙겼다.

다행히 총과 탄약은 파손되지 않았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널부러진 차량의 파편들이 이미 이 곳에 남아있는 생명은 없음을 짐작케했고, 또다른 테러의 위험이 있을 수도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유일한 생명들은 아군이 아닌 적군일 수도 있었다.


인솔하던 차량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차량 주변에는 이미 피가 흥건했고, 이 정도의 출혈이면 모두 즉사했을 것이다. 구조를 요청할 핸드폰도 무전기도 모두 박살이 났기에 다른 차량들을 뒤져 구조를 요청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어쩌면 이 시간 쯤엔 도착해야할 무리가 오지 않아 누군가가 우리를 찾으러 오고 있을 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대형 승합차의 뒷편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살아있었고, 역시나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모르기에 그저 눈빛으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다.

"괜찮아요? 여기 어딘지 지금 본인이 누군지 알 수 있겠어요?"

"내가 누군지는 알지만.. 말을 할 수는 없지.."

"네, 말씀하시는 거 보니 의식은 있네요, 지금 어디가 제일 불편해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승합차 뒤에 있던 백발의 남성은 말 없이 자신의 다리와 머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다리는 이미 육안상으로도 뒤틀려 있어 골절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머리카락은 피로 뒤엉켜 있었고, 남자의 귀와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황급히 귓바퀴 뒤를 들여다 보았고, 새파란 멍이 보였다.

아마도 이 남자는 머리뼈 바닥이 깨져있을 것이고, 지금 이 상태라면 뇌출혈도 있을 것이었다.

구조인원이 빠르게 도착해야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있는 차량도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해 곧 불이 날 것 같아 위험했다.


의무물자가 담긴 가방을 뒤져 골절된 다리를 급한대로 고정했다.

"여기서 화상까지 입기 전에 빨리 차에서 나가야해요 우리. 제가 부축할 테니까 여기로 나올 수 있겠어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는 아까보다 더 식은땀을 흘리고 점점 의식상태도 나빠지고 있었다.


"이름을 말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말 없이 있다가는 의식을 잃을 거고, 그러면 더 상황은 안좋아지니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말고 궁금한거 하나씩 물어보고 답해주기 할까요?"

"원한다면야. 먼저 물어보시게."

"이런 위험한 일은 왜 하시는 거에요?"

"하하. 군의관 양반 재밌는 사람이었네 의외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라. 아마 조국. 의무. 명예 때문에?"

"예상했던 대로 재미없는 분이셨네요."

"그럼 군의관은 바깥에서 더 안정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는데 군대는 왜 들어와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이 때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아군이길 바라지만, 적군이라도 부상자들과 의사를 공격하는건 제네바 조약을 위반하는 행위이기에 누군가가 우릴 구하러 왔길 바라며 헬기가 내려앉을 터널 밖으로 빨리 이동해야한다.

차량에서 나온다해도 차량이 불타기 시작하면 터널안은 연기로 뒤덮혀 구조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잠시 뒤, 헬기소리는 더 선명해졌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널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요! 여기 환자 있어요! 여기요!"

차량 밖에서 이제는 의식이 거의 없어져가는 백발의 남성을 붙잡고 파편을 주워들어 차량을 미친듯이 때리며 소리를 내었다. 곧바로 구조요원들로 보이는 흑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신원미상. 남성. 왼쪽 정강이 골절, 뇌출혈 의심되며 뇌바닥 골절 의심됨. 빨리 후송해서 수술이 필요합니다. 헬기로 빨리 옮겨주세요."


곧바로 몇명의 인원들이 들것을 가지고 와서 남성을 실어 갔다.

그리고 나머지 시신들을 수습하러 위치를 알려주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까는 잘만 걷고 뛰어다녔는데 갑자기 무슨일이지? 당황하는 찰라 결국 불이 붙은 차량이 불길에 전부 휩싸였고, 연기가 터널 안을 가득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일어나다 넘어지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점점 연기를 들이마시며 몽롱해졌다.


그러게. 군대는 왜 들어와서 이런일을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는거지.

괜찮아. 침착하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거즈를 적셔서 코랑 입을 막자.

숨이 막혀왔다. 에어백에 묻은 먼지 냄새, 활활타고 있는 철의 냄새.

무의식적으로 무전기에 달린 PTT를 눌렀다. 구조를 요청하려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 성조"


왜 이 순간에 말도 안되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을까? 마치 잠꼬대 하듯 그 이름을 떠올렸을까?

마지막으로 성조를 본 건 15년 전이다. 사실 마지막으로 본 날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는 몰랐다. 나와는 이제 아무 상관도 없다.

그저 떠났다 말한디 없이 어느날 갑자기.

어쩌면 잊고 지낸 줄 알았지만 늘 나를 괴롭히던 그 이름.

하지만 하필 이때 성조의 눈빛이 너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왜, 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그 이름이 튀어나온 걸까.

왜 하필 지금.



keyword
팔로워
작가의 이전글프롤로그-나를 지키려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