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나의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때는 90년대였고, 우리는 바다가 가까운 어느 소도시에 살았다. 토요일에서 일요일이 되는 그 짧은 주말을 털어 아버지는 중형차에 코펠과 돗자리 등등을 싣고 어린 우리를 태우고 항상 달리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야외에 우리를 풀어놓고 본인은 벤치에서 주무신 적도 많았는데, 그래도 아버지의 철학은 아이들은 집에 있는 것보다는 일단 데리고 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차에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바다와 산과 계곡을 따라다녔다. 돌아보면 여행지에 대한 기억은 딱히 없지만 더운 여름 창문을 열고 달리는 차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낭만이었던 시절이었다. 취사에 대한 규정이 없던 시절에 딱히 요즘 같은 캠핑이라고는 부르긴 어려워도 계곡 근처 같은 곳에 가서 돗자리 펴고 밥을 지어먹거나 국물만 먹어도 재밌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아이들은녹색 유리 병에 들은 사이다나 환타를 얻어먹고 다 먹은 발을 계곡 물을 담았다 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오게 된 이후 부터 갈 수있는 곳이 줄었다. 대신 우리는 해마다 4월이면 식목일 또는 한식날 할아버지 선산까지 차를 타고 달렸다. 큰 아버지부터 셋째인 아버지까지 일가가 모여서 벌초를 하는 이 날은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벌초하고 산소 주변에 꽃나무를 심는 동안 어린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차가 지나기도 힘든 논둑길을 타고 논 밭을 거치고 흙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그 과정이 영 불편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왜 이렇게 불편한 곳에 나를 데리고 왔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작은 꽃들을 모아 꽃다발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게됐다. 앵초, 제비꽃, 냉이, 노루귀 등등처럼 작고 예쁜 꽃들을 한 아름씩 모아 풀로 묶으면 제법 그럴싸했다. 비록 그렇게 만든 꽃다발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이 귀여운 꽃의 이름이 앵초인것을 나중에 알았다. (촬영: 화성 우리꽃 식물원) 그 작은 꽃들도 사실 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 '우리꽃'에 대한 지식이 생긴 후였다. 어릴때는 그저 다양한 색깔에 보드랍고 작은 꽃잎을 모으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목련 진달래나 철쭉 벚꽃같은 화려함은 없는 그러나 산 주변에 널린 꽃들 말이풀. 이 놀이가 좋았던 것은 꽃을 얼마든지 뽑을 수 있다는 것, 몇 시간을 놀아도 아무도 잔소리를 안 한다는 점이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색상의 변형. 놀랍기만 하다
점심 즈음이 되면 엄마와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 여자들이 모여서 선산 아래 자리를 만들고 점심밥을 짓기 시작했다. 돗자리에는 양념한 불고기 전 떡 과일을 비롯한 먹거리가 차려졌고, 인원이 많은 때는 두 팀이 나눠 앉아 자리를 펴고 다 같이 밥을 먹었다.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모두 돗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야외에서 밥을 먹는 모습, 지글지글 팬에서 익어간 양념고기와 함께 감자나 양파 호박 돼지고기가 들어간 고추장 찌개를 다같이 한 그릇 씩 퍼서 먹는 모습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내 기억에 남아있다
돌아보면 우리 일가가 선산에서 벌초를 이유로 다같이 밥을 먹었던 것은 북쪽에서 피난길을 타고 내려온 실향민 가족이었다는 역사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고향을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 형제도 찾아갈 곳이 딱히 없었고 마치 고향집에 온 것 처럼 다 같이 모여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밥을 먹고 소풍 돗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집안 사람들에게 시골집을 찾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않았다. 어린 나이에는 딱히 그곳이 묘소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후로 항상 할아버지는 그곳 산소에 계셨으니 비록 살아계신 할아버지는 뵙지 못했지만 4월의 꽃동산 속에서라도 반겨주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산소 모임은 세월이 흐르고 사촌들이 결혼하고 어른들의 행사로 남게되었지만, 더이상 밥을 지어먹는 문화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모이고 서로 얼굴을 확인하는 문화만큼은 여전했다.
때로는 여행하는 시간과 장소가 꼭 비싸거나 좋은 장소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에 필요한 것은 그보다도 '정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꼭 남들이 가는 코스가 우리 가족한테 맞으라는 법도 없으니. 남들이 가는 맛집이나 사진 뷰가 우리가 가는 곳이 될 필요는 없다. 서로 의견을 서로 맞춰갈 수 있다면 말이다. 여행도 현실이니 부담 없이 서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적당하게 먹고 어느 정도 깨끗하고 안전한 곳에서 잘 수 만 있으면 된다 .
좋은 여행이랑 한 방향만 보고 지루하게 달리지 않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여행을 가고 싶다. 한 사람이 오래 운전하는 자동차는 편리하긴 하지만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지루함과 피로함이 크니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도착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이라, 평소에 하던 잔소리 같은 것은 집에 두고 오려한다. 주어진 0박 0일 동안은 다른 것을 보지 말고 같이 가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사진도 좋지만 기억에 오랫동안 저장해놓고 싶다. 그날의 풍경과 나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날에 같이 먹었던 맛있었던 음식들에 대해 그 사람과 오래 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 어린 시절 식목일의 그 가족들의 풍경처럼. 그렇게 삶의 기억들을 여행의 한 순간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