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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Mar 15. 2024

리코더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딸이 말했다

아이의 좌절,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형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4학년인 첫째에게도 새 학기 증후군이 찾아왔다. 하교 후에는 오히려 처음 학교에 간 둘째보다 스트레스를 받아오는 걸 보고 놀랐다. 적응이 안 되는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의 어색함, 늘어난 학습량, 새로 추가된 과목, 진단평가, 악기 시험, 회장 선거.. 등교 2주 차에 있었던 일 들이었다. 일련의 스케쥴이 휘몰아치고 첫째 아이는 결국 아침 등교 시간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오히려 것이 아니었다. 리코더 시험을 봐야 (내가 보기엔 아닌 듯한) 하는데 시험을 못 봐서 선생님께 혼나면 어쩌냐고 갑자기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리코더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어차피 못하는 아이도 한 둘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리코더는 그냥 새 학기 모든 스트레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고, 어이없는데서 감정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런 딸을 보고 있자니 10살도 넘었으니 육아의 고비에서 왠지 한 발 비켜난 것이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리코더 때문에 울고 있는 딸은 마치 두 살짜리가 블록 쌓기를 하다가 마음대로 안된다며 성질을 부리는 모습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덩치는 좀 커졌지만 이 아이는 자기감정에 빠져서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편도체에 납치당했다'라고 표현하는데, 편도체는 우리의 뇌에서 극강의 두려움이 왔을 때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초적인 부분을 담당한다고. 

이런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는 거의 되지 않는다. 최대한 자신을 가라앉히고 서서히 이성적인 자신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아이들이 유난히 공포와 관련된 영상에 관심을 보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빠져있는 걸 지켜보면서, 그 나이 때에는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현상이구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두뇌에 스트레스랑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어른들도 (굳이 돈을 내고) 평소라면 보고 싶지도 않을 것들을 공포체험하러 것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어서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니까.


또 한 가지 떠올랐던 것은  딸이 어릴 때 하도 힘들어서 읽었던 육아서의 한 구절이었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소한 좌절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 입장에서 대체로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안될 때가 분명 있다. 그것이 공공장소여서 일 때가 있고, 어른들과 함께 있는 장소라서 그럴 때도 있고, 부모의 시간과 체력이 안될 때도 있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는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결국 '거절'이다. 아이가 분명 안된다고 하면 실망할 것은 뻔하다.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 치고 안된다고 했을 때 싫은 티를 안내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다. 어떤 아이는 그런 거절에 잠시 실망했다가도 다시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린다. 하지만 그것이 안 되는 아이가 있다. 그래서 문제다. 아이가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한다기보다 느낌으로 감지하면 다른 쪽으로 시도해 보거나 잠시 쉬거나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계속 하나만 보고 징징거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격 탓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육아서에 따르면 '사소한 좌절'에 익숙해지는 것도 훈련이고 연습의 일종이라고 한다. 결국 아이가 그것을 못하는 것은 아이 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다. 제한을 두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을 잘 못익힌 탓이다. 비록 지금이 3월이라 힘든 시기이긴 해도, 첫째에게는 지금은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속으로 곪아갈 완벽주의의 사고관마음에 있다는 것을 안다. '뭐든지 잘해야 해, 틀리면 안 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해, 절대 없어, 가지고 말겠어' 아이 마음 속의 완벽주의는 언젠가 선택적인 것으로 바뀌겠지만, 아이스스로 심하게 깨지기 전에 마음을 최대한 바꾸도록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딸은 대충 눈물을 닦고 학교를 가긴 했다. 왜? "지각하면 선생님이 혼낼 테니까." 이러면서 말이다. '힘들지만 다시 해볼게요'가 아니라 말이다.


공부가 힘든 것인 것임으로 인정한다. 학교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식을 배운다는 것 이상으로 좌절을 극복해 내는 아이의 태도이고 자기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기도 할 진데,  육아 10년에 부모도 육아공부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20살이 되는 해에 이런 고민을 완전히 치울 수 있을까.

복잡한 세상에서 성장하는 몸만큼이나 사고의 깊이가 더 커지길 바라는 것은 엄마의 욕심이 아니길 바라며. 비가 온 뒤 땅이 굳는 만큼 아이의 마음도 더 단단하고 깊어졌으면 좋으련만. 어째 비만 오고 굳어지지는 않는 것이 또한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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