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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 밥그릇과 재개발

과거의 기억과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

by Who am I

몇 년 전 남편의 외할머니는 사시던 빌라를 떠나셨다. '재개발'이라는 이슈 아래 남편이 어린 시절 자라온 집,

조부모님이 살던 집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나와 남편 모두 조부모님들이 사시던 공간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모두 사라졌다. 근대화 산업화를 겪은 세대의 땅이 100년도 안된 시간에 천지개벽처럼 완전히 바뀐 것이다.

30년 주기로 재개발되는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는 100년 넘은 건물이 즐비한 외국 어느 나라의 건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이한 면이 있다. 얼마 전 1기 신도시가 재개발되는 뉴스를 들으니 결국 한국 아파트의 수명은 30년~40년 정도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난다. 1세대의 생애주기보다도 짧다.

아파트가 분명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인 주거와 경제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돈의 가치 말고는 딱히 스토리텔링이 없는 공간에 산다는 생각을 한다. 집이 곧 아파트와 부동산 그리고 서민들의 자산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사실은 한국인의 집에는 부동산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남편의 할머니가 떠나시기 며칠 전, 할머니는 주거를 다른 곳에 옮기시고 우리는 사시던 집을 둘러보았다.

할머니가 사시던 기간의 대부분은 재개발이라는 이슈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거지로 살려고

근처에 들어온 새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집 안 밖에는 할머니는 같이 서서히 낡아갔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곳에서 뭔가를 심고 기르고 물을 주고 장을 보고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되어 버려진 세간살이를 돌아보다가 나는 오래된 밥그릇을 하나 가져왔다. 오래되었다고

해봐야 진품명품에 나갈 정도의 유물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30년 전쯤에 이불속에 묻어놨을 듯한 스테인리스 밥공기다. 식당에 가면 나오는 가벼운 알루미늄 공기가 아니고 그보다는 묵직한 스테인리스 공기였다.

그 안에 들어가는 밥의 양만 해도 일반 밥공기의 두 배는 될 듯한 밥공기. 아마도 이 밥공기의 주인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따뜻한 밥을 고봉으로 드셨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밥은 온도와 유난하게 관련이 많은 듯하다. 사실 우리가 먹는 식사의 적당한 온도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일정한 상태이며, 1일 권장량과 칼로리까지도 정해져 있지만, 한국 사람은 음식의 양과 스타일, 같이 먹는 사람, 차갑고 뜨거운 정도가 마음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마음의 식사'가 따로 존재한다.

마치 따뜻한 이불 밑의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전해주는 사랑의 무게처럼, 너와 내가 같이 먹는 음식의 온도는 곧 내가 전해주는 사랑의 온도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따뜻한 밥, 따뜻한 국, 따뜻한 밥상처럼 사람들의 관계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며 남겨놓은 밥공기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있다. 없는 사람까지 챙기는 배려와 세심함. 심지어 돌아가신 가족을 위해 차려놓는 제사상의 밥그릇까지도 말이다. 밥뚜껑의 의미는 일종의 보존이고, 상대적으로 무거우면서도 뜨거운 밥공기의 성질은 가볍게 지나치질 못한 관계에 대한 의미와 같다.


따뜻한 밥만큼이나 중요한 따뜻한 집,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나의 모든 결점을 받아줄 가족들과의 관계. 이것이 한국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신적인 세계의 일부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추운 유라시아 대륙에서 건너와서일까. 사람들이 원하는 열기는 실제의 온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뜨거운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것, 이성적인 것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종종 드러나는 것 같다. 특히 유튜브에서 한국인들이 만든 영상들을 보면

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서로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한다.



스테인리스 고봉 밥그릇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들려줄 할머니는 재개발이 시작되는 그

즈음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세대의 진짜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한 채 그렇게 개발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신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우리가 노력할 수만 있다면 지난 세대의 기억들 역시도 현시대의 새로운 도시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 노력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에 없는 듯하다.

경복궁과 같은 역사적으로 큰 건물에 대한 복원도 중요하지만, 개발 이전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에 대한 기록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아파트 단지만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런 도시설계는 없을까.

가끔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우리 모두의 정신이 생각보다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의 정신이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기억을 강제로 삭제하는 것이 아닌, 정당하게 이해하고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포클레인으로 갈아엎는 것 이상으로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밥공기가 남긴 가치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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