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그머니 스며드는 언어들.
작가가 하는 진짜 작업이 무엇일까. 나는 티를 내지 않은 채로
조금씩 사람들의 무의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나는 선한 의도로 말하고 싶다. 진정으로. 의식을 조작하는 일을
대놓고 고백하기엔 좀 부끄럽긴 하다. 하지만 픽션의 중요한 기능은 고통에 찬 기억이라도
바른 식으로 바꾸어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중년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은 차라리 일상에서 사람들 간에 받은
상처나 막말은 기억을 순하게 바꿔서라도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다 받아들이고 산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아픈 기억이라면 적당히 지워지고 희미해진 사이 알맹이만 남기고 다 버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오는 황석희 번역가의 강연을 들었다. 황 번역가님은 최근의
저서 '오역하는 말들'을 이야기하면서, 한동안
SNS에서 사람들이 상처받은 독설과 막말을 최대한 의역해서
올리는 작업을 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번역가의 직업윤리와 맞지 않을 정도의
의역이기도 하고 때로는 오역이 될 수도 있는 말들. 그런 말들의 홍수에서 번역가님은
마치 쌀에서 돌을 고르는 섬세한 손길처럼 세심하게 '말'을 진심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한 것.
글로 쓴다는 것은 말을 계속해서 고르는 작업이다. 쓰고 지우 고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내 의미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말은 실수가 보이지 않지만 글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번역가라는 직업은 작가와 영화감독의 숨은 맥락과 의도를 수없이 고민해서 풀어놓는 직업
이 아닐까. 최근 외국어를 다시 배우면서 새삼 느끼고 있다. 내가 배우는 이 한 줄의 문장은
얼마나 많은 변형이 있고, 그 변형에는 각각의 뉘앙스가 얼마나 다른지. 작가가 그것을 창조하면
번역가는 숨겨진 코드를 다 풀어낼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황번역가님의 '오역'이 어떤 의미에서 치유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 친척 동료 등등에게서 듣는 말들. 거르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칼이 되어 들어오는
말들. 그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나름 답을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가님 말대로 정리승리면 좀 어떤가. 어차피 우리는 소시민인들인 것을.
정말 다시 들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런 말을 왜 한 걸까?
그것은 결국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부족함, 즉 결핍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는가? 아닐 수도 있다. 가깝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가까운 것은 다르다. 가족이라 해도 매일
매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각자 살아온 세월도 다르고, 생각하는 배경도 다 다르다.
더군다나 우리는 각자 다른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원칙적으로 내 고통과 너의 고통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사실 나를 알아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모르기 때문에 넘겨잡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알아야 하고,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하지만 막말과 독설은 역설적으로 '난 너를 잘 모른다'라는 표현의 반대말인셈이다. 그러니 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말을 깊이 들을 필요는 없다. 이런 부분은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큼은 해주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그냥 두자.
도넛의 속에는 쨈이 일부 있지만 그 쨈이 도넛의 전부는 아니지
날 아는 부분을 쨈이라 하면 모르는 부분은 빵이라고. 나를 향한 말이 나에 대한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수도 있지.
두 번째는, 말폭탄에 숨겨진 메시지에 관한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상대에 대한 단순한 오해와 무지
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터트리고 싶은 감정을 말에 숨겨놓는 사람도 많다. 이런 말들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딸아이가 만약 "엄마 미워! 엄마랑 안 살 거야" 이렇게 말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나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 마음을 알아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좌절의 표현이고,
당사자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말이다. 곧 터질 위험신호가 있는 말은 가급적 돌려 듣지 않고 솔직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도넛일 줄 알고 먹었다가는 큰 일 날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을 알아차리는 것이
민감성의 차이가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상대의 말을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령 나는 2014년에 태어난 아이의 시각과 다르고 전공이 다른 남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나는 상대에 대해 무엇인가를 안다기보다는 모른다는 시점에서
말을 골라 듣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단 내가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실수를 덜 할 테니까. 그런 뒤에 번역가의 말처럼 다정한 말 한마디를 고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냥 던지는 말에 비하면 다정한 말은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 가.
그래도 대화가 어렵다면, 상대도 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껍데기 속에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칭송받을지라도 그 내면은 말주변도 부족하고, 참을성이나 인내심도 부족하고, 한 없이 약하기만 인간성. 서로가 그런 부족한 면 마저 용인할 때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다 가리려고 노력하고 살 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혹시라도 누군가
나에 대해 지적할 까봐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사람들을 사소한 잘못을 단죄할 만큼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때론 겸손이 더 중요하다고.
조금 더 낮추고 좀 더 부드럽게 용서하는 태도로 겸손하게 접근해야 비로소 대화라는 것이 가능해지고
사람들과 어울려살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높은 기준으로 살 끼보다는.
5년을 아이를 학교를 보내면서, 하교 시간이 되면 선생님의 알림장 메시지를 받는다. 하이클래스 앱이라는
곳에서 보내는 것인데, 사실 이 메신저는 5년 동안 그 기능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지만, 보내는 선생님의
스타일이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어떤 선생님은 정말 용건만 보내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보내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듯하다. 어떤 선생님은 매번 같은 말을 붙여놓기 하듯 쓰는 분도 계신다.
이 메시지는 보통 세 줄을 넘지 않는다. 이 짧은 메시지를 쓰면서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신학기 첫 주 아이의 5학년 담임 선생님은 공지사항의 맨 마지막 줄에
'학습선거 출마 할지 밤에 자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적어주셨다.
나는 이 말을 읽고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참 다정하시네'라고 말을 했다. 단지 '학급대표 선거 실시'
라고 적을 수도 있는 딱딱한 말을 이렇게도 전달하시는 구나라고 말이다.
딸은 살짝 웃었다. "우리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엔 흑마법사 같으시지만, 사실은 엄청 다정한 분이야"라고.
정말로 그날은 자기 전에 이불에 누운 채 우리는 학급대표에 나갈지 대화를 했다. 딸은 고작 한 표밖에 안 나올 것 같으면 안 나가는 게 더 났지 않냐고. 부끄럽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또 생긴다고 했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 그다음 날 딸은 정말로 학급대표선거에 나갔다고 한다. 물론 결과는 압도적 표 차이로
다른 친구의 승리였고, 딸은 6표를 받고 끝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그런 용기를 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그리고 그런 강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선생님의 다정한 메시지 한마디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혹시 아는가. 6학년에는 정말로 많은 표를 얻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조금씩 세상이 변해간다면 말이다.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를 너무 봐서, 기회를 놓치곤 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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