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유리병인가요? 플라스틱 병인가요?
주말에 마트에 갔다. 보통은 일주일 길면 이주일까지도 장을 한꺼번에 봐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일주일 내내 활용한다. 중간중간 필요한 것은 간단히 집 앞 마트에서 보충한다.
이 날은 주말 치고는 무척 바쁜 날이었다. 첫째 아이가 운동경기를 나가는 날이라 새벽 5시 반
부터 준비릏 했고, 온 가족이 경기를 관람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장을
보러 큰 마트에 갔다. 일주일 치 먹을 것을 사고 수박을 사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카트가
어느새 한가득 찼다. 장 보다가 우연히 첫째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바질 시드음료(일명 개구리알)
을 넣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에 유리병을 올렸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계산원의 손을 거친 뒤 그다음 과정에서 유리병은 데구루루 굴러 마트 계산원의 발 밑으로
철썩하고 깨지고 말았다. 바코드의 삑삑 소리만 나는 계산대에서 유리병 깨지는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마트 계산원은 무척 당황해했다. 그리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자기
실수로 물건이 떨어져서 깨졌다고. 다시 하나 가져오시겠냐고. 나는 좀 귀찮아져서 괜찮다고
그 음료수를 안 사겠다고 했다. 계산대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계산원은 그 와중에도
계산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쁜 시간 대에 손님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주변 직원들에게 요청을 했고, 다른 직원이 달려와 계산원 발 밑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치웠다.
동료 직원들은 계속 괜찮냐고 물었다. 계산원은 다행히도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계산을 마쳤을 때 음료수를 못 먹어서 어떡하냐고 계산원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담담하게
"안 다치셨으면 됐어요"라고 나왔다. 그 음료수를 사야겠다는 김이 약간 빠진 상태였다
. 약간의 피곤함과 유리병 깨지는 소리에 어질어질해서 잠시 반응을 멈추고
그렇게 서서 나머지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나오는 내 뒤로 직원과 누군가가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관심을 꺼벼렸다.
남편이 나오면서 "그러게. 물건을 잘 올려야지라고" 내 탓을 했다.
나는 계산원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차는 달리는데 작은 사건이 부른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이 마치 속옷 밑에 들어간 가시 같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 앞에 누군가가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위험한 상황이 올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가? 나는 괜찮냐고 즉시 말하고 일으켜 주는 그런 사람인가? 그런
적극성을 보이는 사람인가?
첫째 아이가 경기 나가기 전에 너무 떨린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뭐가 떨려? 그냥 하던 대로 해.라고 뱉어버렸다.
아이는 엄마는 좀 더 친절하게 공감해 줄 수는 없어?라고 다시 되물었다.
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러기엔 나는 너무 눈치에
길들여졌는지도 몰라. 중용이니 중심이니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에 쫓기고 의견 없이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몰라. 전 세계에 2억 6천 마리나
있지만 너무 흔해서 34프로만 살아남는다는 그 집 비둘기처럼 너무 흔해서
금방 사라지는 존재여서 그런가 봐. 결국 눈치만 보다 죽는 거지
나의 친절함이 곧 싸구려로 변하고 그게 또 무너질 까 겁내고 또 겁나서
서 이렇게 숨죽이고 사는 걸지도 몰라.
그렇게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상태의 누군가로 또 살아가는 걸지도 몰라.
희귀 동물은 너무나 특이해서 죽고, 누군가 남아있는 숫자라도 세주지만 흔해빠진
비둘기는 숫자가 줄어도 아무도 세지도 않지. 전 세계에 비둘기가 한 마리만 남으면 어떨 것 같아?
친절함이란 대체 마트에서 사 온 과자에 얹은 딸기잼 같은 거니? 아니면
그 위에 얹은 트러플이나 까망베르 혹은 캐비어 같은 거니? 별 개성
없는 상품에 얹힌 희귀한 식재료 같은 거니? 나한테 그런 게 없다고
대체 달라질 것이 뭔지. 혹은 나에게 그런 친절함을 얹었다 해서 내가
집비둘기나 새우깡 혹은 케첩보다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거니.
남편은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AI가 얼마나
요약을 잘해주는데 굳이 시간 들여서 독서를 해야 하는가? 이렇게 묻는다.
한편으로 AI에게는 질문하는 법을 또 배워야 하고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묻는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내가 비록 흔한 집비둘기이긴 하지만, 고작 이마트 전자매장에서 고급
오디오 앞에서 음악감상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의 이러한 질문에는 나름 할 말이 있다.
책을 읽은 것이, 딱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마디 한마디가 너무
내 말 같아서 그래서 읽는 거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사람이 대신
해줘서 읽는 거라고. 내가 아는 것은 남이 알지 못해도 그렇게 존재한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듯이.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인공지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이 오고 있고
올 것이지만, 음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라면과 엄마가 끓여진 국수를
같이 집어넣고 비슷한 맛이 아니냐고 우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싸구려로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것이 오늘이지 않겠냐고. 모든 원인은 저가에 편리함만 찾는
자기 자신 아니겠냐고.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바질시드음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