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강아지와 베타 물고기

그 많던 강아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by Who am I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작은 주택에 살았다. 마당이 좀 있고 파란 철 대문이 있는

오래된 주택이었다. 겨울이면 연탄으로 방을 데웠고 너무 추울 때는 온 가족이 한방에 모여서

잤다. 방이 세 칸인데 늘 쓰는 건 안방과 거실 부엌 정도였다. 나머지 한 방은 침대가 있어 손님이

오면 자는 방, 다른 하나는 아빠의 책이 있었다.

대신 낮에도 어두워서 숨어서 놀기 좋은 어두침침한 '광'이라고 불리는 창고가 있었고

마당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조그만 밭을 만들어서 포도와 딸기 등등을 심었다. 집 대문 쪽으로는

석류나무와 감나무가 있었고 반대편은 다른 집과 등을 댄 담장에는 담쟁이가 벽에 붙어있었다.

그 담으로 가끔 옆집에 사는 애가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이 낮은 편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어느 날 누군가 버린 문짝을 갖고 오셨다. 아빠는 톱과 못질 몇 번으로 평상을 만들었는데

그게 마당과 거실을 이어주는 역할이 되었다. 평상은 더운 날 집에 있기도 뭐 하고 밖에 나가기도 싫을 때

드러눕기 좋은 대청마루 같은 역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참 운이 좋았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그후로 몇년 동안 도시생활로 고생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동물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마당이 있는 집에 살던 시절 강아지를 한번 키울

기회가 있었다. 엄마가 아시는 분 집 개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한 마리를 준다고 했다.

오빠와 나는 처음으로 강아지를 데려와 키운다는 그 설렘이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 어느 날

정말로 옆단지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강아지가 너무 어려서 떼놓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고, 엄마 개는 일부러 눈을 가리고 있었다고

했다. 강아지가 우리 집에 가는 길을 못 보게 하려고 하려고 말이다.

집에 오고 난 후 마당강아지는 오빠와 나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잘 때까지도 데리고 놀고

싶어 했는데 엄마는 반대했다. 마당에서 키우는 개는 잡은 밖에서 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가 여름이어서 마당에는 모기들이 많았고 강아지는 계속해서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밤새 울었다고. 엄마는 강아지가 너무 영리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결국 강아지는 현관에서

잔 것 같았다. (80년 이야기라 지금과는 다른 시절)


20250903_132415.jpg 그많은 시골강아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며칠을 우리 집 마당에서 있었을까.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어제저녁까지 집에 있던

강아지가 아침에 나가보니 사라졌다. 우리는 집과 주변 일대를 찾았지만 강아지는 없었다.

철문이 닫혀있으니 나갈 수는 없었을 것 같은데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수수께끼는 풀렸다. 옆단지에 사는 아주머니가

찾았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강아지를 집 근처애서 찾았다는데, 놀랍게도

그 강아지는 엄마개가 물어서 거기다가 데려놓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집과 아주머니 네는 집이 꽤 떨어져 있었는데, 엄마 개는 놀랍게도 자기 새끼가

떠난 날 우리 집의 위치를 알았나 보다. (심지어 눈도 가렸다는데)

그 새벽에 엄마개는 오로지 후각 하나에 의지해 자기 새끼를 찾으러 우리 집까지 왔고

우연히 우리 집 근처에서 자기 새끼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낑낑 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엄마는 철문 사이의 구멍으로 새끼를 빼냈다. 그리고 그 목덜미를 물어서 자기

집 근처까지 가다가 지쳐서 근처에서 새끼를 내려놓고 집에 들어간 것.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들어오라는 뜻인 듯)

동물농장 뺨치는 사건의 반전에 우리는 강아지와 엄마개를 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동물이라도 젖도 못 뗀 아기를 엄마에게 떼아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이다. 모든 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무 어린 새끼들은 모견과 일찍

떼어놓았을 때 밤새도록 운다는 것을. 아마 우리 집에 온 강아지도 엄마개를 그리면서

그렇게 울었기에 엄마가 멀리서 찾아온 것이 아닐까.

나는 어린 나이지만 강아지를 보면서 아무리 귀여워도 사람이 손대면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결국 개를 키울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말이다.




둘째는 돔물을 유난히 좋아한다. 어릴 때 놀이 삼아 농장으로 체험학습도

보내고 작은 동물 체험 카페도 데리고 다녔던 것이 인상 깊었나 보다. 잠깐 재미 삼아갔던

앵무새 카페 체험 이후, 둘째는 나를 따라다니며 조르기 시작했다. 돔물을 키워보고 싶다고.

(처음에는 앵무새였다가, 반대하니 앵무새가 아니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했다. 나는 어린 시절 강아지 실종 사건 이후로 잠깐 맡아준 경우 빼고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 심지어 햄스터 거북이 등등도 성공적으로 키워본 적이 없다.

구피를 키워본 적도 있었지만 물관리를 못해서 모두 죽었다. 거북이도 어릴 때 키워봤지만 눈병이

걸렸고 밖에서 일광욕시켜 준다고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온 경험이 다였다.

그리고 나는 안 그래도 아이들 물건으로 복잡한 집에 동물용품까지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주택처럼 그나마 외부공간이 있는 것도 아닌 아파트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동물 키우기가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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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둘째 아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에 진심인지라, 매일 동물 관련 유튜브를 보고

동물 관련 책을 읽었다. 둘째가 원하는 것은 작고 귀여운 동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엽다고 한들 집에서 기르는 것은 정말 돈과 정성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둘째의 조르기가 끊임없이 계속된 후에, 남편은 결국 큰 결심을 했다.

딱 한 마리 물고기만 키우자고. 그리고 끝이라고 못밖았다.

그나마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고 생물에 관심이 많은 편인 남편이 인터넷을

뒤져서 적당한 물고기를 찾아냈다. 물론 그 이야기도 가족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있다가

어린이날, 그날도 동물 이야기를 하는 둘째를 데리고 남편은 동네에 하나 있는 아쿠아 샵으로 갔다.

아빠의 깜짝 이벤트라고 할까.

그렇게 집에 온 물고기가 배타였다. 금붕어와 구피 말고는 일자무식인 나는 처음 보는 물고기였다.

베타는 특성상 어항에 딱 하나만 키워야 한다고 했다. 가끔 마트에서 유리어항에 미동도

없이 화려한 지느러미만 펼친 채 떠있는 물고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물고기였나보다.

하지만 핑크 색의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진 우리 집 베타는 대형마트에서 보던 아이들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베타는 신기하게도 사람을 보면 무척 좋아했고 무슨 말이라도 하는 듯 계속해서

내쪽을 보면서 입을 꿈뻑였다. 마치 물강아지 같다고나 할까. 물고기가 애교를 보린 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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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어항을 파셨던 사장님 말에 의하면 자동으로 물이 걸러지는 어항에 밥만 주고 물은

한 달에 한번 갈아줘도 된다고 했다. 사장님 말에 의하면 베타는 일 년이면 장수하는 거라고.

하지만 집에 온 이후,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물 갈아주면 되겠지 라는 안온한 마음은 사라졌다.

활발한 물고기는 점점 수풀 뒤에 숨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이 줄고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지느러미가 눈에 띄게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사람이나 물고기나 몸이 안 좋으면

움직이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물고기를 살리려고 수온계를 달고 보일러도 달아주고

물도 자주 갈아주면서 다시 살려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여름 여행을 가고

큰 아이가 다리를 다치고, 관심이 뜸해진 사이 물고기의 아가미에 큰 혹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곰팡이 종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찾아보고 내린 결론은 물고기에게

암이 생긴 거라고 했다. 일종의 종양이라고. 그래서 남편은 큰 마음먹고 결국 사이즈가

큰 어항으로 바꿔서 물고기를 넣어주었다.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이었다. 수조

환경도 바꿔주고 소리 나는 모터도 조용한 것으로 교체되었다. 덕분에 물고기의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전보다 더 주인을 반기는 애교도 늘었지만, 종양은 전혀 줄지 않았다.

남편은 처음에 어항이 작아서 더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이 원인이지만, 종양자체는

유전자 변형이 많이 된 베타라는 종에서 생기는 것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 동남아에서 어린 베타를 키우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술병 같은

곳에서 수십만 마리가 자라는 그런 환경이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진 종으로 키우려고 개량을 했고, 우리 집에 온 물고기가 하프문이라고 하는 종이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우리 집에 와서 적응을 했지만 그 역시 좁은 어항과

한정된 환경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물고기 입장에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눈에 띌 만큼 화려한 분홍색 지느러미를 가졌다는 것은 베타의

생존을 힘들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베타의 지느러미는 무거워서

물고기에게도 부담스럽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양은 있지만) 사람 눈을 보면서 반가워한다. 대체 이 조그만 생명체에

게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커지는 혹 때문인지 물고기는 예전보다 힘이 많이 약해져 간다. 사람도 피곤하면

자러 가듯 베타도 수조침대에 누워서 잔다. 아이들 말처럼 용궁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려동물이 주는 잠깐의 즐거움만큼 동물의 아픔과 병까지도 감당하면서 산다는 것, 그리고

이 작은 생명들의 태생부터 분양까지 거치는 복잡한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유전자 변형이 가져오는 문제까지. 작은 물고기 한 마리는 생각의 범위를 많이 넓혀준다.

아쿠아리움에서 화려한 물고기를 볼 때와 우리집 작은 어항을 볼 때 기분은 참 다르기도

하다는 것.


우리는 지구라는 환경에 여러 생물과 공존해서 살아간다는 것. 단지 인간만 잠깐 살다가는

지구라기엔 너무나 많은 생물체가 지구의 운명에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있다는 것.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책임과 관계가 얽혀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생물에게 하는 행위가

곧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다시 한번 되 새겨보면서, 오늘 쓰는 에어컨이라도

줄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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